[기획 5]예년과 마찬가지로 의료과실로 인한 민?형사소송 등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료과실에 한정되지 않고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의사나 의료기관의 법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법조계에서도 의료관련 소송 변화추이에 민감하게 반응, ‘의료전문’으로 간판을 내거는 변호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문변호사로 등록된 변호사는 현재 642명이며 이중 의료분야는 41명이다. 이는 지난해 31명에 비해 32% 증가한 수치다. (기준 2012년 5월말)
우리나라 의료소송 접수 건수 또한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된 1989년에는 69건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초반까지 연평균 40%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고 그 이후로는 60%까지 높아지는 추세다.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제도권에서 운영되는 만큼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발생할 경우 도미노 소송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점도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가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전문적이다 보니 소송 당사자들이 전문변호사를 선호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의료법 강의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될 만큼 법조계에서 의료와 제약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의료단체가 제기하는 행정소송, 헌법소원도 늘고 있다. 의사나 병·의원이 정부나 국가기관을 상대로 적극적인 권리행사 수단으로 소송을 택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제약계는 여러 개의 의약품이 있어 약가인하 소송을 두고 법률사무소들이 서로 수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법률사무소 의료담당 변호사들은 제약회사를 찾아 승소 노하우와 맨파워를 자랑하며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 김앤장과 세종, 율촌, 태평양, 광장, 화우 등은 거물급 변호사를 배치, 공개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또한 이들 법률사무소는 일반 수임료보다 저렴한 1%를 거론, 급기야 0.7~0.8%의 수임료를 제시하는 로펌까지 등장했다.
의사나 의료기관이 복지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건수는 2001년 14건에서 2009년 334건으로 증가했다.
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의료분야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의료전문 로펌을 선택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2010년 전문변호사 등록을 시작했을 때 보다 증가추세는 가파르다”면서 “의료분야의 인기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분야의 높은 인기 비결로 의료소송 증가와 전문성”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의료관련 소송이 증가한 것도 있지만 2012년 로스쿨 졸업생이 쏟아지면서 해마다 2000여명씩 늘어난다”면서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져 전문성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변화도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성 강조 로펌, 의사 상대 법률 강의 신설
국내 최초로 의료전문팀을 구성한 법무법인 화우에 소속된 의료관련 변호사는 10여명, 제약부분까지 합치면 20여 명이 있다. 그중 의료전문변호사로 등록된 이는 5명이다.
화우는 한 해 의료관련 소송을 50~60건 이상 진행하고 있으며 민사는 물론 제약까지 폭넓은 소송을 맡고 있다.
법무법인 충정도 의료전담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총 4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외에도 사안에 따라 변호사들이 협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충정은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등 대형병원들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법인 퍼스트도 의료관련 소송 전담팀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법무법인 대세는 보험급여 등재와 신의료기술평가, 제약과 의료기기의 품목허가 자문 등 의료관련 소송은 물론 의료경영전문가를 위한 교육과정을 개설해 의사들에게 법률 교육도 하고 있다.
법무법인 세승 또한, 의료민사소송과 의료행정 소송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한해 의료관련 소송만 300여 건에 달한다.
이 외에도 중소 법무법인과 개인들이 의료전문변호사를 표방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법무법인 화우의 의료관련소송 간사인 김재춘 변호사는 “최근 의료기관들의 행정소송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에 비해 자기 권리 찾기가 강해 진 것”이라면서 “과거 의료기관들이 정부정책에 순응했었다면 최근에는 적극적인 자세로 변한 것이 행정소송 증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재춘 변호사는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의료기관의 예산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증가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A로펌 L변호사는 “민형사 소송도 늘고 있지만 최근 의료행정 소송이 많아졌다”면서 “최근에는 행정소송과 헌법소원까지 세분화, 다양화되고 있어 의사들의 법률적 수요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변호사는 “요즘은 집단소송도 늘고 있어 소송 규모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면서 “의료전문을 표방하는 법률사무소는 더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B로펌의 P변호사는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를 구할 때도 전문변호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강조한 변호사들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행정법원 판사 “의사들 행정소송 너무 많아”
그러나 정작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야 하는 판사는 의료계 소송에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지난 4월 18일 개원의 2명이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결정처분 취소 소송 첫 변론이 있던 서울행정법원 제6부에서는 “의사들의 의료 행정소송이 너무 많다”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변론에서 공단과 공급자의 설전이 계속되자 이를 지켜보던 재판장이 “의사들의 재판 청구는 너무 많다”며 복지부, 공단, 심평원을 상대로 제기한 줄 소송을 두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솔직히 의사들의 허위 청구 사례도 많다”면서 “의사들이 소송을 너무 많이 제기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진행 중인 소송만도 수십여 개로 ▲영상수가 인하와 약제비 환수 소송 ▲과징금부과 처분취소 ▲의사 자격정지 처분취소 ▲요양급여 환수 처분취소 ▲요양기관의 업무정지 ▲약가인하 처분취소 등 유사한 사례의 재판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 정책과 관련해 복지부와 공단, 심평원 등 관리감독기관과 의료기관인 공급자가 소송으로 맞서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