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재판에 넘겨진 의사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속도를 내고 있다.
낙태수술을 실시한 것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헌재 결정에 따라 소급 적용이 돼 업무상승낙낙태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동반된 위법 행위에 대해선 유죄가 선고되는 모습이다.
허위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는 행위가 대표적인 예다. 낙태 수술을 한 것과는 별개로 부당하게 요양급여를 청구한 사실이 인정,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주심 이흥구 대법관)은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승낙낙태죄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기 부분을 유죄로 해달라는 검사측 상고를 최근 기각,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2015년 광주 소재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던 의사 A씨는 환자를 상대로 낙태수술을 했다. 그는 이후 낙태수술을 했던 사실을 숨기고 진료기록부에 병명을 '상세불명 무월경'으로 기재했다.
조사 결과, 의사 A씨는 총 67회 낙태 수술을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8명의 환자들에 대해 '상세불명 무월경' 혹은 '자궁의 급성 염증성질환' 등으로 진료기록부를 거짓 작성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 변호인 측은 무죄를 주장했다.
앞서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관련된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A씨 변호인 측은 "업무상승낙낙태 혐의(낙태수술을 한 행위)에 대해선 앞서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림에 따라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업무상승낙낙태와 관련한 의료법위반, 사기죄도 도 직권파기사유가 발생한다"고 항변했다.
이어 “당시 낙태수술이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그와 관련한 낙태수술이나 진료를 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며 “이 같은 이유로 A씨는 낙태수술을 할 때 현금을 받고, 처방전이 없을 경우 상당히 비싼 항생제 처방을 위해 자궁의 염증성 질환, 상세불명 무월경, 급성질염 등으로 등록했다”며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할만한 사유가 참작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요양급여를 청구한 의료행위는 적법하고 적정하게 이뤄졌다"고도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A씨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낙태수술이 불법이었던 당시 사정에 비춰 보더라도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한 행위가 참작되지는 않는다고 판단, 요양급여를 편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비록 이 사건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중 일부분이 소급적으로 효력이 없게 하더라도 A씨가 요양급여를 청구할 당시 낙태 행위가 고의의 범죄행위에 해당함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낙태 사실을 감추고 무관한 것처럼 병명을 기재해 요양급여를 청구한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에 속아 급여를 지급한 사실 자체는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사기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이어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모든 낙태 행위가 곧바로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대상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므로 의사인 A씨가 낙태수술과 관련해 당연히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라며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 판단에 법리적 오해가 없다고 보며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