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에 대한 의료진 설명을 법으로 의무화한 '설명 의무화'를 두고 벌써부터 의료계에서 우려 섞인 시선이 가득하다.
보건복지부 의료추진단이 밝힌 목적은 의료사고 이후 발생하는 송사(訟事) 감소가 목적이지만, 오히려 환자들이 의사를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행위에 대한 컴플레인이 의료사고로 둔갑하는 등 의사와 환자 간 갈등 및 충돌만 늘려 임상현장 혼란만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은 지난 22일 ‘환자-의료진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향’ 토론회에서 설명 의무화에 대한 도입 계획을 공개했다.
추진단은 "의료사고 이후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이 부족해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상황을 줄이고자 설명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현행 의료법도 수술·처치 등 치료계획과 위험성에 관해 ‘사전 설명’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법제화로 ‘사후 설명’까지 의무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다만 의료진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재판상에서 증거 채택 등은 차후 논의를 더욱 거칠 예정이다.
의료사고가 발생 시 의료진이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과하면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설명에 소극적이었던 분위기가 존재했다.
이에 수사·재판 과정에서 의료진이 환자·가족에게 한 유감·사과 표시 등은 증거 채택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의료계 "간호법 이어 설명법 도입 등 의사 진료 옥죄는 법안 줄줄"
박근태 회장 "설명법 아닌 사과법"
설명의무와 함께 간호법 등 의료계를 옥죄는 법안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의료계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 의정갈등 여파로 의사들에 대한 정부의 보복이라는 의견이 줄을 잇는다.
특히 설명의무가 가진 다양한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잉금지원칙 위배 및 진료현장의 급박한 모든 상황을 법률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설명의무 불이행을 문제 삼은 악용 소지다.
추진단은 설명의무 법제화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및 알권리를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의료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대목을 장점으로 꼽았지만 의료계는 정반대 입장이다.
A개원의는 "설명법, 간호사법, 사고배상보험 등이 통과될 경우 진료, 수술이 마비될 수 있다"며 "기존 수가로 모든 걸 떠맡기는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료사고 설명법이 무죄추정 원칙이 아닌 유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설명의무가 아닌 사과 의무라는 토로도 목격된다.
B개원의는 "의료사고임을 전제로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은 유죄 추정의 원칙"이라면서 "그냥 의사 처벌을 위한 법일 뿐"이라고 힐난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이번 사안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 문제 제기를 했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설명법이 아닌 사과법이라며 복지부가 언급한 해외사례들은 국내 실정과 전혀 맞지 않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가 없다”며 “의료개혁추진단에 의사들 참여가 안된 상황에서 일방적 진행은 문제가 있어 의료계와 소통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교수 역시 설명의무에 대해 우려감을 표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인과관계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사과를 하는 이상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C 교수는 "현재 병원들 상황을 보며 사후 설명의무가 잘 지켜질지 의문"이라며 "의료사고에 대한 판단부터 각 과별 상황이 모두 달라 그것을 어떻게 규율할지도 혼란스럽다"고 꼬집었다.
이어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의사들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며 이로인해 임상현장을 떠나는 의사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