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진료실 테러’라 불리는 병원 내 난동과 폭행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선 의료진을 지켜내기 위한 병원들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응급실 폭행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보안요원을 늘려도 진료현장 폭행 및 폭언이 지속되면서 병원들은 나름의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충남대학교병원은 최근 흉기난동 등 직원들이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경찰 무도교관을 초청해 호신술 교육을 실시했다.
경찰들의 무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진이 직접 병원을 찾아 직원들에게 주요 상황별 호신술 및 제압술을 전수했다.
환자나 보호자 난동 및 폭행 상황에 대비해 경찰과의 핫라인을 구축하고 매뉴얼을 마련하는 통상적인 대응을 넘어 직원들에게 직접 호신술까지 익히도록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충남대병원은 환자 난동으로 교수가 희생된 아픈 기억 탓에 진료실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하다.
지난 2008년 6월 충남대병원에서 치료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퇴근하던 담당교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교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수 차례 찔려 그 자리에서 비명을 달리했다.
당시 충남대병원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고, 많은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됐지만 의료진 대상 난동과 폭행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6개월간 충남대병원에서는 총 46건의 폭행·난동이 발생했다.
충남대병원은 근무 중 폭언 및 폭행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의료진이 늘면서 지난해 녹음 기능이 부착된 사원증을 지급했다.
가위, 밴드, 환자 상태 기록을 위한 필기도구 등 소지품이 많은 의료진이 핸드폰 등 녹음기를 별도로 갖고 다니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사원증에 녹음기능을 탑재했다.
해당 사원증은 언제 어디서든 후면의 녹음 스위치를 이용해 간편하고 신속하게 현장 녹음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됐다.
그에 더해 올해는 직원 대상 호신술 교육까지 실시하면서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의료진 대상 난동에 대비했다.
충남대병원 한 관계자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반복되는 난동 사태에 상흔을 떨쳐내기 어렵다”며 “끊임없는 진료실 테러는 의료진은 물론 다른 환자들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난동에 따른 공포감은 형용하기 힘들다”며 “의료진 폭행 문제가 계속된다면 향후 헬멧과 보호대를 장착하고 진료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폭언 피해를 경험한 의료노동자는 57.5%에 달했다. 폭언 가해자 유형별로는 환자 및 보호자가 46.9%로 가장 높았다.
2019년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 3만6447명 중 69.2%가 폭언을 경험했으며, 13%는 폭행, 11.8%는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별다른 개선이 없는 수준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공개한 2021년 수련병원 평가결과 또한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 등의 폭력에 빈번하게 노출돼 있음이 드러났다.
전공의에게 ‘근무 중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폭력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고려대의료원 43.8%, 삼성서울병원 36.6%, 서울대병원 34.9% 등이 그렇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