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허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계는 마지막까지 대통령 거부권을 기대했지만 간호법에 밀려 수포로 돌아갔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면허 취소 사유를 ‘의료법 위반’으로만 규정하고 있지만 해당 개정안은 이를 모든 법령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확대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모든 위법행위가 면허취소와 직결되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병원을 운영 중인 병원장의 경우 더욱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의료법은 물론 건강보험법, 근로기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의사면허법 시행을 앞둔 병원계의 우려감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편집자주]
지난 2월 16일 국내 유수 대학병원 원장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사면허법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직후였다.
병원장들은 의사면허법 강행 처리를 규탄했다. “의사 무시하기, 의사 길들이기” 등 원색적 표현까지 써가며 병원계 정서를 전했다.
대학병원 원장들이 의료 현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 이후 3년 만으로, 이번 법안에 대한 병원계 반감의 방증이었다.
이들은 특히 “의사 총파업 등 극한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최종 입법이 이뤄질 경우 대학병원들도 투쟁 카드를 동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병원장들은 “의료인에 대한 범죄 유형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범죄로 면허취소 사유를 확대한 것은 타 직종과의 형평성에도 위배된다”고 힐난했다.
이어 “개정안 대로라면 형 집행 이후 수년 간 의료인 면허를 박탈 당하게 된다”며 “이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직무 관련성이 없는 범죄에 대해서까지 의사면허를 취소시키는 것은 과도한 규제이며 헌법적 원칙 침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통령 거부권 행사도 무위로 돌아가면서 결국 의사면허취소법은 최종 확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은 폐기 수순을 밟았지만 의사면허취소법은 2023년 5월 19일 관보에 게재됐고, 11월 20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악법”
의사면허취소법은 지난 2021년 2월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 등이 대리수술 등 당시 의료계 일탈 및 범죄 사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반영해 발의하며 논쟁을 촉발시켰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이 운전 중 과실로 사망사고를 일으켜 금고형을 받으면 수 년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며 “과잉처벌”이라고 토로했다.
진료현장에서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해서 처벌받는 것은 물론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강력 범죄나 성폭력 등으로 면허가 취소되는 것은 수긍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교통사고나 금융사건 등으로 금고형 이상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된다는 점에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실제 법조계에 따르면 금고형 특성상 과실범, 즉 의도치 않았음에도 일어나는 일에도 해당 법률이 적용된다.
우연한 사고로 사망한 경우, 계단에서 굴러 일행을 사망케 한 사건, 집에 들어온 도둑을 폭행했다가 사망해 과잉방어로 처벌받는 경우 등에 금고 이상의 형이 나온 판례도 있다.
즉, 금고형은 적극적인 범죄 의사가 없더라도 부주의 만으로도 나올 수 있는 형량이기에 이런일에 직업을 잃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해외에서도 특정 형량 이상에 대해 일괄적으로 의사면허를 제제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의료계의 반감을 키웠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별도의 규제기구를 두고 의료인 범죄의 중대함이나 의료행위와의 관련성 등을 검토 후 의사면허 정지나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사건·사고 빈번한 병원, 원장 의사면허 ‘위협’
의사면허취소법은 지극히 의사 개인에 대한 처벌 법령처럼 보이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동집약도가 높은 병원 특성상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개설자인 병원장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여느 의사들 보다 면허취소법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 의료법만 하더라도 처벌조항이 십 수가지가 넘고, 근로기준법 역시 경영자인 병원장에게는 늘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은 병원장들에게 가장 위협 요소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병원 종사자에게 발생하는 B형간염, C형간염, 매독, 후천성면역결핍증 등의 혈액전파성 질병을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는 고압산소통 등의 관리 소홀로 폭발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등도 해당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492개 병원 중 96.1%인 473개의 병원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 예로는 병리과 근무자들은 포름알데히드나 자일렌 등 발암물질에 대해 국소배기장치나 보호구조차 없이 무방비 상태로 일을 하다가 독성물질에 중독되는 경우 등도 다반사다.
병원 내 시설관리 소홀로 바이러스가 확산되거나, 병원 내 시설물 관리 부실로 환자가 보호자에게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중대재해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가 병원 내 감염으로 사망하거나 시설물 관리 부실로 사망하는 경우 병원장은 1년 이상 25년 이하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한 중소병원 원장은 “의사면허취소법은 일반 의사 대비 병원장들에게 더 부담일 수 밖에 없다”며 “날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경영환경에 시름이 깊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장들 사이에서도 의사면허취소법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원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의사면허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애석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