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행위냐, 제조 행위냐.’
말장난처럼 들리는 이 문구가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학술단체 ‘대한약침학회’의 유·무죄를 가를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약사법 제31조 1항에서는 의약품 '제조(製造)'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약침학회에서 약침을 대량으로 만들고 판매한 것을 '제조 행위'로 판단할 경우 '불법'이 된다.
반면, 약사법 부칙 제8조는 ‘한의사는 자신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한약 및 한약제제에 한해 직접 '조제(調劑)'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이에 근거한 '조제 행위'로 볼 경우 '무죄'가 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재판장 장준현)는 지난 5일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으로 기소된 대한약침학회 강대인 회장의 형사재판 증인 신문 첫 공판을 진행했다.
강 회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당시 식약청)에 허가받지 않은 시설에서 270억2300만원 상당의 52종류 약침주사제 총 386만5003cc를 만들고 전국 2200여 곳의 한의원에 판매ㆍ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정에 선 첫 증인은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전(前)회장이였다. 의협 추무진 현(現)회장과 강청희 부회장도 청중석에 자리해 공판 과정을 지켜봤다.
강 회장 측 민규식 변호사(법무법인 스카이)는 노 전 회장에게 약 80개의 세세한 질문들을 던졌고, 신문 과정에서 "조제 행위냐 아니냐"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앞서, 2012년 대한의사협회는 "대한약침학회가 무허가시설에서 불법 의약품인 약침을 대량 제조, 판매하고 있다"며 고발했다. 지난 해 검찰은 대한약침학회에 대한 공소를 제기했다.
◆ 檢 "약침학회, 회원 상대 황련해독탕 특별회비 8500원 판매" 증거 제시
검찰과 의사단체는 대한약침학회가 무허가 시설에서 약침액을 불법 '제조'했다고 보고 있다.
이날 김효석 검사는 증거물로 ‘대한약침학회 사이트의 인터넷 판매 사실’과 ‘증권신고서’ 등을 제시했다.
검찰이 제시한 화면에는 약침학회가 온라인 상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약침을 판매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는 마치 인터넷 쇼핑몰의 운영형태와 흡사했다.
약침액 ‘황련해독탕’은 ‘특별회비’ 85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회원들이 배송받을 수 있도록 돼있다. ‘보관 수량 2668개’라는 문구도 있었다.
또 약침학회의 증권신고서 상에서 학회가 유산증자를 하면서 제약화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품목 허가를 받고자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현행 약사법 제31조 1항은 ‘의약품 제조(製造)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기준에 따라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효석 검사는 "대한약침학회가 단위제형 별 주사제는 건별로 품목허가 받아야한다는 점을 명백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사건은 불법으로 의약품을 제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한약침학회 “한의사들의 공동 조제 행위”
반면, 대한약침학회 측은 ‘직접 조제(調劑)’ 규정, ‘원외탕전실 설치·이용 및 탕전실 공동이용에 관한 지침’을 근거로 내세우며 반박에 나섰다.
약사법 부칙에 따라 한의사는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한약 및 한약제제에 한해 직접 조제할 수 있고, 한의사들이 직접 원외탕전실 성격의 학회 연구실을 방문해 직접 조제한 것이므로 적법하다는 주장이다.
대한약침학회 측 민규식 변호사는 “한의사들의 편의를 위해 조제시설을 대여한 것에 불과할 뿐, 학회 차원에서 제조해 판매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민 변호사는 "개인 한의원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설을 갖출 수 없어서 한의사들이 모여 학회를 구성해 약침을 조제한 것이고, 전국 한의사들이 조제를 위해 서울(학회)로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피력했다.
또 "약침 조제 및 제조에 관련한 법이 없는 실정"이라며 "한의사들이 정부 당국에 법률적인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거듭 촉구해왔다”며 “한의사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참고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환자치료 목적 하에 대한약침학회가 시설을 설치해 운영한 것이고, 특별회비는 판매 대가가 아니라 학회 활동을 위한 비용”이라고 반박했다.
공판을 진행한 장준현 판사는 “조제행위인지 제조행위인지에 대한 사실관계, 약침학회와 한의원이 어떤 식으로 약침을 조제해왔는지, 학회는 특별회비를 어떻게 운영해왔는지 등을 밝히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 醫 "환자 안전 위협" ↔ 韓 "조제 위한 법적 규정 필요"
'약침'에 대한 의사단체와 한의사단체의 시선은 상반된다.
‘약침’은 한방에서 경혈에 주입하는 한약물 등의 정제액으로, 다수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약침을 직접 주사하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도대체 약침은 무엇이고 주사제는 무엇이냐,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도 없이 제제가 환자 몸에 들어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약침은 당연히 식약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2005년도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이 2015년인데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며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미비한 의료법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한약침학회 강대인 회장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일이다. 의협에서 너무 한의학을 폄훼하는 측면이 있다"고 반박에 나섰다.
강 회장은 "의협은 약침을 써서는 안된다는 논리 아닌가. 그러나 국민건강보험 상에 약침술이 들어있다. 정부에선 인정해주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주장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약침을 제조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식약처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제약사에서 한의사들이 마음 놓고 공급받기를 원한다. 이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는 게 문제"라며 "가능토록 제도적으로 보호해줘야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