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보호자 불신 초래 '의사 설명의무' 적법 경계선
기준 모호 '소송·분쟁' 매년 증가, 전체 의료분쟁 중 47% 설명의무 연관
2020.04.19 17:42 댓글쓰기

환자에게 치료의 필요성과 방법, 위험성·합병증 등을 설명해야 할 의사의 ‘설명의무’를 두고 어디까지가 적법의 경계선에 속하는지에 대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의사 설명의무는 수술 전(前)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진료행위에 과실이 없어도 위반이 인정되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해가 지나갈수록 설명의무를 둘러싼 의료소송이나 분쟁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그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 기준은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의료계에서 이슈가 된 설명의무 위반 사건이 있었다.

미성년자였던 A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수술에 관한 설명 후 동의서를 받아 침습적 뇌혈관 조영술을 진행한 의료진에게 법원이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며 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사건이다.

의료진이 수술을 받은 A양(12세)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의무를 모두 이행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환아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 이유다.

A양은 지난 2016년 6월 서울 某상급종합병원에서 뇌MRI 검사 결과 모야모야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아 침습적 뇌혈관 조영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모야모야병은 특별한 이유 없이 내경동맥 끝부분이 막히는 만성 진행성 뇌혈관질환이다.

수술 전 의료진은 A양 보호자에게 ▲진단에 관한 설명 ▲치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의 예후 ▲치료 방법의 종류 ▲시술 이유/목적/필요성 ▲시술 방법/내용 ▲발생 가능한 합병증/부작용 ▲문제 발생 시 조치사항 ▲시술 후 주의사항 ▲기타 추가설명 등의 항목이 기재된 시술동의서를 제시하며 이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후 A양 보호자는 시술동의서에 서명했다.

병원 측은 수술 전에 A양의 뇌혈관 굵기와 모양을 확인하기 위해 뇌혈관에 조영제를 주입 후 엑스레이(X-ray)로 촬영하는 조영술을 시행했지만 A양은 조영술이 끝난 지 3시간 만에 말이 어눌해지고 입술을 실룩이는 등 증상을 보였다. 뇌 MRI 검사를 시행한 결과, 급성 뇌경색 소견이 발견됐다.

그 후 A양은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진행했지만 퇴원 후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인 언어기능 저하 손상과 우측 편마비를 겪게 됐다.

이에 A양과 가족들은 의료진이 조영술 합병증과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무리하게 수술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병원 측의 조영술 시행은 적절한 조치였고 A양이 내원할 당시 이미 질환이 상당 진행돼 수술 부작용이 아닌 자연적인 경과에 따른 증상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미성년자인 A양 보호자에게 조영술의 필요성과 방법을 설명해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병원 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조영술 시행은 적절했지만 설명의무에 대해 의료진이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조영술을 담당했던 피고 병원의 소아신경외과 주치의가 당시 12세인 A양에게 조영술을 시행하는 이유 및 그로 인한 뇌경색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직접 설명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진료기록상 기재를 찾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특히 시술동의서의 ▲진단에 관한 설명 항목 중 ‘상기 환자에서 뇌혈관조영술을 시행하는 이유’ 기재 부분이 공란으로 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CT 조영검사나 MRI 혈관술이 아닌 조영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시술 과정이나 시술 후 발생 가능한 뇌경색 부작용과 위험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환아와 보호자가 이를 진지하게 고려한 후 시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영술과 같은 침습적 시술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뇌경색 발생의 위험성이 높아 환아에게 시술 과정을 설명해 긴장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다만 취학 전이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전신마취 후 진정상태에서 시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병원 의료진은 확인된 사실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모두 이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기 때문에 A양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선 미성년자는 의학적 이해가 어려워 법정대리인에게 설명 후 서명을 받는데 12세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의료진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피고 측은 금년 2월 10일 상고장을 제출, 해당 사건은 현재 상고심 진행 중이다.
간암 환자에게 뇌 전이 추가검사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은 의사에게 설명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었다.

의사 설명의무는 모든 의료과정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결과발생이 예측돼 환자의 자기결정에 의한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만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다.

B씨는 지난 2011년 1월 某대학병원에서 간과 비장 등에 악성림프종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 치료에도 증세가 악화되자 B 씨는 같은 해 8월 재입원해 MRI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뇌종양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 B씨는 뇌에 항암제를 투입하는 수술을 받고 항암화학요법을 받았으나 결국 같은 해 11월 사망했다.

B씨 유족들은 환자가 계속 두통을 호소했는데 병원이 뇌 전이나 뇌종양 발병 가능성과 추가 검사를 간과해 적절한 시기에 뇌종양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2억 5000만원 상당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1심은 “치료과정에서 뇌종양을 발견하지 못한 과실을 인정할 수 없고 악성림프종이 중추신경계를 침범했다는 것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다”며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은 “의료진이 망인에게 나타난 두통 등 증상이 악성림프종의 뇌 전이나 뇌종양 발병에 따른 증상일 수 있다는 설명과 그에 대비한 추가검사를 받을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하거나 망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며 병원 측의 설명의무위반을 인정해 3천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했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의사 설명의무는 모든 의료과정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결과발생이 예측돼 환자의 자기결정에 의한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만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다”며 “의료진이 악성림프종의 뇌(腦) 전이나 뇌종양 발병 가능성, 추가 검사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그로 인한 위자료 지급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설명의무 관련 의료분쟁 증가 추세

최근 몇 년 사이 수술 전 ‘설명의무 위반’과 관련된 법적 소송과 의료분쟁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의료인들의 상당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원장 윤정석)이 2020년 1월 설명의무 및 자기결정권 관련 의료분쟁 예방을 위해 발간한 소식지  ‘MAP(MedicAl Accident Prevention) 12호’에 따르면 2015년~2018년까지 설명의무에 쟁점을 둔 의료분쟁은 2102건으로 전체(4405건)의 47.7%를 차지했다.

설명의무 의료분쟁은 ▲2015년 354건 ▲2016년 464건 ▲2017년 527건 ▲2018년 75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상대적으로 수술이 많은 병원급 이상의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등 외과계열에서 많이 발생했다.

설명의무 적절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적절함’이 51.4%로 과반수를 넘었고 ‘부적절함’이 27.7%, ‘판단 불가’가 20.9%를 차지했다.

환자 상태별 설명의무에 대한 적절성 판단 결과를 살펴보면 사망 관련 사건에서 ‘적절함’으로 판단한 사건 비율이 64.4%(264건)로 가장 높았으며, 장애 관련 사건에서는 ‘부적절함’으로 판단한 사건 비율이 32.4%(70건)로 제일 많았다.

주요 진료과목(상위 5개 진료과목)별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배상액을 살펴보면, 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치과, 성형외과 순으로 낮아졌는데 외과 평균 배상액이 약 92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성형외과는 약 340만원으로 3배정도 적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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