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성은 기자] 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의 병상수, CT, MRI 등 고가 의료장비 수, 외래진료 횟수는 그동안 자랑이 아닌 골칫거리로 여겨지곤 했다. 뛰어난 의료 인프라가 아닌 의료 과잉, 한국 의료 적폐로 불리곤 했던 많은 병상과 CT 수, 높은 의료접근성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처음으로 효자가 됐다. 많은 병상을 갖춘 지역별 대형병원에서는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충분히 보급된 CT 덕분에 코로나19 감염을 쉽게 가려낼 수 있었다. 전국에 고루 분포한 3만1000여 개 의원은 코로나19 1차 방어선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은 확진 전에 동네의원을 방문했고, 의원에서는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구별해 선별진료소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가 CT·MRI 등 고가 의료장비를 많이 갖췄다는 사실은 뛰어난 의료인프라가 아닌 무너진 의료전달체계에서 비롯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OECD 2019 보건의료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CT 보유대수는 2017년 기준 인구 100만명 당 38.2대로 OECD 평균인 27.8대에 비해 10.4대 많으며 전체 회원국 중 8번째 순위다.
우리나라 보유 CT는 5년간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2012년 100만명 당 36.9대에서 2017년 38.2대로 5년 동안 1.3대 늘었다.
오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가의료장비 공급과잉 현상을 꼬집는 연구에서 “공급자 유인 수요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이로 인한 의료비 부담도 가중될 개연성이 크다. 수량 자체를 조절하는 방법과 함께 가격 조절을 통해 공급을 통제하는 방법을 적절히 병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희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CT, MRI 등을 이용한 과도한 진단 때문에 우리나라가 갑상선암 발생률 1위 국가가 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자 부끄러운 일”이라며 “의료전달체계가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상선암 과잉진단 및 과잉수술 문제는 지난 2013년부터 꾸준히 논란이 되어 왔다.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0.2~0.3㎝의 작은 암까지 진단해 수술로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율이 더 높게 나타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대규모 감염병 유행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같은 충분한 의료장비는 환자들의 진단 접근성을 늘려줘 치명률을 줄이는 효자가 됐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감염자를 가려내는데 검사키트 만큼 맹활약한 의료기기로 흉부CT가 손꼽힌다.
흉부CT는 다른 호흡기 질환 환자와 코로나19 환자를 구별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물론 코로나19에 감염됐으나 음성 판정을 받은 감염자를 찾아내는 것에서 크게 활약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코로나19 공식 검사법으로 지정 사용되고 있는 유전자 검사보다 흉부CT가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더욱 정확하게 진단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중국 우한 통지병원 연구팀은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은 1014명을 분석한 결과, 흉부CT 민감도가 97%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한 유전자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검진자 중 75%가 흉부CT에서 양성으로 진단됐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CT는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모른 채 환자가 방치되는 것을 예방, 사망 환자를 줄이는 역할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OECD 2019 보건의료통계와 질병관리본부 자료를 통해 전세계 CT 보유량과 코로나19 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CT 보유대수가 많은 국가일수록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CT 보유수는 인구 100만명 당 38.2대로 OECD 국가 중 8번째로 많으며, 코로나19 사망률은 2.4%로 극히 낮다.
인구 100만명 당 CT 보유대수가 111.5대로 압도적인 1위인 일본도 코로나19 사망률이 3.6%로 낮은 편에 속한다.
독일도 CT 보유가 35.1대로 OECD 평균인 27.8대보다 많아서인지 코로나19 사망률은 4.4%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낮다.
CT 보유량이 적은 프랑스, 스페인, 영국과 같은 국가들은 코로나19 사망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사망률이 18.9%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의 CT 보유대수는 17.4대로 OECD 평균보다 훨씬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또한 11.8%로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은 대표적인 국가인데 CT 보유대수 또한 18.6대로 적다.
공공의료인프라가 발달한 영국의 코로나19 사망률도 14.8%로 유럽국가 중 프랑스 다음으로 높은데 2012년 기준 영국의 CT 보유대수는 9.1대로 극히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