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의료분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법정으로 넘어가는 의료형사소송이 빈번해지고 있다.
환자와 의료진 간 법정싸움에 대한 보도가 이어질 때마다 환자들의 불신은 깊어지고, 역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료계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의료형사소송 증가 추세가 계속되면 환자와 의료진 갈등의 골도 깊어진다.
더 큰 문제는 소송에 휘말리는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의료진은 가급적 ‘방어진료’를 하고 결국은 의료안전성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환자와 의사가 서로 믿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와 환자의 갈등양상은 결국 국민건강 위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진과 환자 간 분쟁사례는 그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의료분쟁조정원에 따르면 의료사고 분쟁 건수는 최근 4년간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자유한국당의원에 따르면 의료사고 분쟁 건수는 2014년 827건에서 2018년 1천589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같은 의료분쟁 증가에 따라 형사소송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요 몇 년 새 ‘가수 신해철 사망사건’, ‘횡격막탈장 오진 법정구속 사건’,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사건’ 등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의료 형사소송 사건만 해도 적지 않다.
의료진을 상대로 한 형사소송이 계속되면서 의료계가 나서 반발하고 또 선처를 호소하는 모습도 잦아졌다.
의료계를 들끓게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급성혼란 환자 사망사고’가 최근의 대표적인 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와 당시 응급의학과 전문의였던 B씨는 급성 후두개염으로 호흡곤란을 일으켜 실려온 환자를 급성 인두편도염으로 오진, X-ray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후 1심 재판부는 이들 의사들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 각각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을 지난해 선고했다.
2심 재판을 앞두고 전문의가 속한 응급의학회는 회원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열흘이 조금 넘게 진행된 기간동안 응급의학과 전문의 3808명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학회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의료과실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횡격막 탈장 오진 사건’ 판례를 인용해 “응급의학은 급성 질환과 외상환자 평가와 처치를 병행하며 활력징후를 안정화시키고 수술, 입원, 중환자실 입원과 같은 최종 진료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의학 전문분야”라며 “응급의학 특성을 고려한 판결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재판 결과,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의료계 일부에선 씁쓸하다는 반응이 남았다. 동료가 재판에 휘말리면서 의료행위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의사들도 더러 있었다.
충북대학교병원 한정호 소화기내과 교수는 그의 논문 ‘의사 입장에서 본 의료 분쟁’을 통해 의사들의 의료분쟁에 대한 두려움을 피력했다.
한정호 교수는 이대 목동 신생아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의료진은 환자를 살리려고 통상적인 상황보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여 진료 강도를 높이거나, 더 오래 환자를 진료하느라 퇴근을 못하고 밤을 새우고 연속 진료하는 시간을 늘리다”며 “심지어 질병 등의 개인 사정으로 죽음을 직면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리려고 진료를 지속하는데, 이러한 형사소송 사례를 보고 의료인의 소명감에 회의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 경찰, 검찰, 심지어 법원에서도 정상이 참작되기보다는 의료사고의 원인이 불명확한 상황에서조차 감옥에 갇히고 여론에 의하여 마녀사냥이 되어 대중 앞에 벌거벗겨진다는 사실도 목도했다”며 강하게 분노했다.
의료소송을 바라보는 의사들이 이처럼 심난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소송을 겪거나 준비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목소리도 높다.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담당의를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의사에게 직접적으로 상해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서울 한 종합병원에선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담당의와 해당 병원 직원이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수술 경과를 두고 의료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최종 패소한 것으로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올해 초에도 강원도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환자가 간호사를 비롯해 의료진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사건이 있었다.
모든 소송이 그러하지만 의료소송의 경우 어느 한 쪽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결론나는 경우가 많다.
대리수술이나 유령수술과 같이 수술 관리감독 과정을 둘러싼 사례가 아닌, 의학적 과실을 따져야 하는 수술 과정 자체와 관련된 소송 건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의학적 과실을 따져나가는 과정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이해차가 발생하고, 또 하급심과 상급심의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도 많아 최종 재판 결과에 의구심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또 긴 재판기간 동안 소송에 얽힌 의료진과 환자는 지쳐가며 상대측에 대한 감정의 골도 깊어지게 된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의료사고 후 환자는 의료인의 대처과정 등에서 복수감정이 생기게 된다”며 “의료인과 환자 관계는 적대관계로 발전하게 돼 형법을 무기로 삼는 사태로 치닫게 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판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가급적 의료형사소송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하 교수는 “소송이 장기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 수사 인력이 의료에 관해 전문성이 없다는 점, 형사소송이 과실인정 및 인과관계 입증에서 더 엄격한 점 또한 형사사건화의 단점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