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의료인 명의를 빌려 개설된 사무장병원이 임금체불을 했다면, 지급 의무는 의사가 아닌 실질적 운영자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의사의 명의를 빌려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전직 제약사 직원 A씨를 상대로 직원들이 낸 임금지급청구에서 A씨에게 지급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최근 환송했다.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지난 2014년 퇴사 후 의사들을 고용, 이들의 명의로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개설했다.
A씨는 고용한 의사들의 명의로 건물을 매수하고 개설허가를 받았다. 이후 해당 병원의 '총괄이사'란 직함으로 활동하면서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A씨는 고용한 의사의 명의로 개설된 통장과 인장을 소지하면서 병원 수익금으로 입금된 보험급여 등을 운용했다.
계좌에 입금된 돈으로 병원 설비를 구입하고 노무법인과 고문계약을 맺었으며, 병원 직원들을 채용했다. 또한 직원들의 업무도 직접 지휘·감독했다.
그러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약 1년 만에 병원은 문을 닫게 됐고 직원들은 급여 일부를 지급받지 못했다.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실질적 운영자인 A씨를 상대로 지급청구 소송을 냈다.
원심은 A씨에게 지급 의무가 없다고 봤다.
원심 재판부는 의료법에 따라 의사 명의로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이익과 손해 모두 비의료인인 실질적 운영자에게 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금 지급의 의무는 근로계약상 고용주인 의사들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의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실질적인 근로관계는 A씨와 성립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직원을 직접 채용하고, 업무를 감독한 사정을 감안하면 A씨와 직원들 사이에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근로계약에 따른 임금 지급의무는 A씨에게 있다"고 했다.
이어 "이같은 지급의무는 병원 수익이 A씨에게 귀속된다는 의사-A씨 간 약정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의료법 위반사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은 실질적인 근로관계 성립 및 사무장 병원에서의 임금지급의무 귀속 주체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