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삼성그룹의 향후 사업구조 개편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의료사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의료기기 분야의 향배가 주목된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삼성서울병원은 이 회장이 설계 때부터 각별한 관심을 쏟은 사업이다. 1994년 개원해 대기시간·보호자·촌지 없는 '3무(無)'서비스와 병원시스템의 전산화 등 혁신에 앞장섰고 현재는 연매출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빅5병원으로 성장했다.
개원 당시 1000여 병상 규모에서 현재 1989병상까지 확대됐고, 의사 1309명을 합한 전체 직원이 7000여명, 일평균 외래환자는 7000~1만명에 육박한다. SCI 등재 논문이 900여 건에 달하는 등 연구 부문도 선도하고 있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은 5대 신수종 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선정한다. 2020년까지 23조를 투자해 매출 50조원과 고용 4만5000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2011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삼성전자, 삼성물산과 다국적기업인 퀸타일즈가 자본금 3000억 원을 합작 투자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한다. 이후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자회사와 함께 삼성의 바이오 분야를 이끌며 고속 성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사진]도 5G, 인공지능(AI), 전장부품과 함께 바이오를 4대 미래성장사업으로 꼽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해 3분기 기준 영업이익은 565억원, 매출액은 2745억원으로 누적 매출액이 이미 지난해 매출액(7016억원)을 뛰어넘은 7895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첫 매출 1조원 클럽 가입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기기사업 또한 출발은 야심찼다.
지난 2010년 삼성전자는 한국 최초 벤처기업 메디슨을 인수한다. 독보적인 초음파 기술을 가진 메디슨은 이후 삼성메디슨으로 거듭나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당시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조수인 사장이 대표이사를 겸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출범 이듬해 1분기 수출액이 40% 가까이 증가했다.
제품 측면에서도 'RS85'와 ‘HERA 시리즈’와 같은 다양한 초음파 진단기기 및 영상처리엔진, AI 진단보조기능 등을 선보이며 발전해 왔다. 다만 영업이익은 한동안 적자를 기록했었다. 2017년에는 영업이익 65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504억, 영업이익은 21억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 CT 전문 기업 뉴로로지카(NeuroLogica)를 인수하고 보청기 사업 진출설이 도는 등 의료기기 사업 개척에 적극적이었던 삼성전자도 최근에는 체외진단기 사업을 매각하는 등 관심이 덜하다.
웨어러블 장비 발전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외하면 의료장비 분야에서는 큰 활약이 없다. 지난 2015년에는 장기간 실적이 부진했던 엑스레이기업 ‘레이’를 매각하고 2018년에는 체외진단기기사업 분야도 팔았다.
A상급종합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삼성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조용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상장비 분야 기술력은 의료 현장에서도 최상위급 평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삼성메디슨이 보유한 초음파 장비 및 기술력을 제외하면 삼성 의료기기 사업은 세간의 관심에 비해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의료진과 의료기기업체들 평가가 갈리는 곳이 이 부분이다. B의료기기업체 대표는 “삼성이 기술 선도 및 혁신 제품 개발을 통해 산업을 성장시키고, 국내 중소업체들도 함께 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현재는 이미 국내 기업들이 경쟁 중인 X-ray 제품 쪽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 회장과 달리 의료기기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알려진 것도 사업구조 재편의 미래를 점치는 데 한몫 한다.
조(兆) 단위 매출이 오가는 병원과 바이오 분야와는 달리 의료기기는 파이가 작은데다 극단적인 다품종 소량 생산의 노하우를 축적한 업체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과연 삼성이 이 같은 투자 의지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