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기에 놓인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해결책으로 의대정원 확대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는 가운데 섣부른 시도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작금의 상황은 ‘공급’이 아닌 ‘분배’의 문제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단편적인 정원 늘리기 보다 각 진료과목에 적절한 인력이 배치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29일 한국의학교육협의회 주최로 열린 ‘의사정원 책정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우봉식 원장은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소아의료 붕괴 등의 해법으로 의대정원 증원 카드를 꺼내든 것은 오히려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일침했다.
이어 “필수의료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정원을 늘리거나 공공의대를 신설하는 식의 해법은 오히려 큰 문제와 후유증만 낳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봉식 원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시스템 개선을 통한 작금의 상황 극복을 제언했다.
그는 우선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으로 구성돼 있는 현 의과대학 교육 커리큘럼은 의사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만큼 과감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충실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과대학 교육을 과감하게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3년 임상 전(前) 교육과 3년 임상교육 진행 '6년 통합의학교육체계' 도입
구체적으로는 ‘3년 임상 전(前) 교육(preclinical)’과 ‘3년 임상교육(clinical)’으로 구성된 6년 통합의학교육체계를 제안했다.
의대 교과과정과 함께 전공의 수련 시스템 개편도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결코 짧지 않은 수련기간 동안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진료 역량을 갖추도록 수련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효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인턴제를 전격 폐지하는 대신 ‘임상공통수련과정’을 도입해 모든 전공의가 필수의료 분야를 진료할 수 있도록 수련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다.
특히 무조건적인 의사수를 늘리기 보다 전문과목별 수급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따른 전공의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신속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전공의 정원 조정을 우선 시행함으로써 공급이 부족한 진료과 전공의 정원은 늘리고 향후 수요가 줄어들 과목은 정원을 줄여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우봉식 원장은 최근 공공의료 해결책으로 정치권과 지자체에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공공의대 신설과 관련해서도 ‘무용론’을 제기했다.
"10개 국립의대서 年 1000명 의사 배출되지만 공공 및 필수의료 진출 미미"
현재도 전국에 10개 국립의대가 매년 1000명에 육박하는 의사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공공의료나 필수의료 영역으로 흡수되는 사례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국립의대 입학정원은 906명으로, 전체 의대 입학정원 3058명의 29.6%에 달한다. 신규 의사 10명 중 3명이 국립의대 출신이지만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기피는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결국 공공의대를 아무리 신설하더라도 작금의 공공의료,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우봉식 원장은 “공공의대 신설을 정치적 셈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지역구에 의대 유치라는 업적을 남기려는 모습은 개발 경제의 구태”라고 일침했다.
이어 “필수의료 위기는 의료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왜곡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정책의 결과”라며 “정부가 다시금 그 과오를 되풀이 하려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