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최근 의료계에 의료현장 복귀를 촉구하는 것과 별개로, 의사단체를 대상으로 3번째 교섭을 실시했지만 이번에도 거부당했다.
이에 노조는 향후 지역사회에 관련 의료기관 명단 공개, 국회와 지방의회의 실태조사 촉구, 고용노동부 진정·고소 고발 조치 등 더 강한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
19일 보건의료노조는 서울 용산구 소재 의협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노조가 지난 5월 20일에 이어 이달 5일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에 '6월 19일에 만나자'고 공문을 보냈지만 이날마저 대화가 성사되지 않자 이 같이 나선 것이다.
노조는 지난 2022년부터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를 대상으로 노동기본권 교섭을 시도해왔다.
노조가 없는 의료기관, 5인 미만 의료기관 등 모든 의료기관에서 일어나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보상보호법 등을 위반하는 사례를 개선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는 취지다.
날로 치솟아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의사들과 달리 의사 외 병·의원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이 여전히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이에 노조는 ▲최소한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기본임금 보장 ▲관공서 공휴일과 주휴일, 노동절을 유급휴일로 보장 ▲사용하지 못한 연차휴가를 수당으로 보상 ▲보수교육 유급 보장과 보수교육비 지원 ▲임산부 보호 ▲의료기관 내 폭력 및 괴롭힘 금지 ▲면허·자격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업무 지시 금지 ▲유급병가 보장 ▲경조휴가 부여 ▲유급 감정노동 휴가 부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결혼식에 연차 사용 "···병원 직장갑질 괴롭힘·성희롱 66%
이날 기자회견에서 황미나 보건의료노조 인천지역지부장은 "원장의 느닷없는 해고 통보로 일자리를 잃거나, 공휴일에 병원이 쉬지 않아 본인 연차를 써야 쉴 수 있거나, 결혼식 때도 연차를 사용해야 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는데 큰 목소리를 내면서 주변 보건의료노동자의 현실에는 나몰라라 눈감는다"며 "의협은 과연 이런 실태를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수도권 소재 한 의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A씨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보건소에서 일했는데, 보건소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직 채용을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A씨는 작은 규모 병원의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한 병동에서 간호사 7명과 보호사 4명이 100명의 환자를 돌봤다는 설명이다. A씨는 "최처임금이 인상돼야 내 임금도 겨우 오를 뿐이었다"고 억울해 했다.
직장갑질 신고 사례에서도 의료기관의 사례가 상당했다는 발언도 나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지난 2년 간 병원에서 들어온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62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건이 66%로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이 너무 심해서 상담을 했는데, 병원 실장이 조용히 부르더니 병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신고하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다윗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남부지부장은 "의협은 사람의 생명을 돌보는 노동 중 오직 의사들의 노동만이 칭송받아야 마땅하고 다른 노동은 천시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나"라고 꼬집었다.
현재 의료계 집단휴진에 대해서도 노조는 "의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행보"라고 봤다. 노조는 "진료거부와 집단휴진을 전면 중단하고, 교섭에 성실하게 참가하라"며 "의협·치협·한의협·병협은 산하 모든 회원사에 적용할 노동기본권 보장 10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의사단체가 계속 교섭에 불응할 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례를 토대로 지역사회에 명단을 공개하고 고용노동부 진정, 고소 고발 및 시정조치, 국회와 지방의회 차원의 실태조사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이 같은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에 앞서 의사단체들은 "애초에 교섭 대상이 아니다"며 교섭에 불응해왔다.
그러나 노조는 "의협·치협·한의협·병협은 사회적 공익기관이고, 사용자인 의사와 병원을 대변하는 사용자단체로서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