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사태 후 무너진 병원→'리스사기' 공범된 원장
대전 D병원 前 원장, H의료기기사와 사무장병원 등 불법행위 공모 자수
2020.11.16 05:0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메르스 사태 중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해 경영난을 겪었던 대전 D종합병원이 불법 사무장병원 의혹에 휩싸였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찰은 의료기기 수입판매기업 H사가 친인척 관계인 J원장과 공모해 이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주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와 함께 H사는 100억원대 허위세금계산서를 발급한 뒤 금융사로부터 불법대출을 한 리스사기를 벌였다는 혐의도 받는다.


H사는 당초 D병원을 설립했던 O원장과의 법적 공방도 진행 중이다. O원장은 D병원이 자금난을 겪던 시기 H사가 계획적으로 접근해 불법대출 행위에 가담케 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O원장은 H사에 대한 대출상환금을 값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다.


O원장은 “계획적인 ‘병원 사냥’에 당했다”며 H사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지역민들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D병원은 어떻게 불법 사무장병원 의혹을 받게 된 걸까.


메르스 사태 직격탄, 순식간에 풍비박산 대전 토박이 O원장의 꿈


대전 토박이였던 O원장은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U대학병원 초대 외과과장을 역임한 노련한 의사였다. 젊은 시절부터 지역주민을 위해 노인질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종합병원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그는 지난 2012년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건축회사를 찾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비싼 건립비에 O원장은 고민에 빠졌다. 개원 공사를 시작할 수 없게 되면서 초조해졌다.


그러던 중 의료장비 수입판매기업인 H사가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D병원 건축비 단가를 낮추고, 의료장비도 좋은 조건으로 공급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병원 신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대출도 주선하겠다고 했다. 
 

이후 O원장은 H사 관계사와 300억원 상당의 병원 신축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190억 상당의 의료장비 계약도 체결했다. H사는 D병원이 신한은행으로부터 200억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서기도 했다. 


이후 D병원 신축공사는 순조롭게 끝나고 지난 2015년 3월 개원식을 가졌다. 하지만 불과 개원 두 달 뒤인 5월 31일, 대전에서 메르스 1호 환자가 입원하면서 병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D병원은 방역당국 행정명령에 따라 한 달간 코호트 격리를 위해 병원을 폐쇄했고, 6월 말 다시 병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 D병원의 경영상황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의료진은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고, 환자는 급감했다. 2개월간 수입이 전무하자 은행은 도산을 우려해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라"고 독촉했다.  


O원장은 어떻게든 병원을 살려보고자 했다. 그는 H사로부터 매달 자금을 빌려 병원 운영비, 대출금 상환 등을 하며 병원 정상화를 도모했다. 당시 O원장이 빌린 자금은 약 100억원에 달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O원장 대출금, 소유권 이전 요구 H사


하지만 O원장의 대출 한도는 금방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병원 지속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O원장과 H사는 새로운 계약에 합의했다.
 

O원장 주장에 따르면 H사는 자신들이 설립한 H부동산투자사에 병원 소유권을 넘겨 추가 대출을 받자고 제안했다. 불법 사무장병원 운영을 제안한 것이다. 이후 병원 상태가 나아지는 대로 D병원을 의료법인으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이에 O원장과 H사는 ▲H사가 지정하는 의료법인에 조건 없이 D병원 기본재산을 출연하고 ▲O원장은 3년 안에 의료법인을 설립하며 ▲이사장과 이사 과반수는 H사가 지정하자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후 H사는 주요 보직자를 교체하고 O원장은 인사, 재무, 경영 등 실무에서 물러나게 됐다. H사의 J회장은 원장직에 자신의 친척인 J씨를 앉혔다. 당시 J씨는 인턴 수련 과정을 받던 중이었다.
 

또 D병원 장례식장과 식당 등 부대시설 수익 또한 H사의 계열사에 넘어가게 됐다.


리스사기·불법사무장 병원 의혹 휘말린 O원장, 신용불량자 상태


O원장에 따르면 이때부터 H사는 본격적인 ‘리스사기’에 발을 들였다. O원장에 따르면 H사는 D병원에 26억원 상당의 2012년식 암치료기 ‘라이낙(Linac)’을 납품하기로 계약하고도 2007년식 구형 장비를 입고해 1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또 64채널 PET CT를 공급하기로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약 30%에 불과한 16채널 PET CT를 납품했다.

의료장비 납품기일을 10개월 넘겨 공급하거나 아예 납품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O원장에 수사기관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특히 H사는 O원장에게 리스 대출을 받으면 그중 일부를 병원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세 차례에 걸쳐 210억원을 불법으로 대출받게 했다.
 

이어 H사는 O원장이 자신들에게 70억원을 빌렸다며 대여금과 구상금 소송도 제기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O원장은 현재 신용불량자 상태다.
 

O원장 뒤늦은 자수, 경찰 기소의견 검찰 송치

2017년 11월 O원장은 대전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공사비 부풀리기, 불법 리스대출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일련의 사건 뒤에는 H사의 의도적인 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서울동부지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며, 대전시청도 아무런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O원장 측은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혐의로 H사 J회장 등을 고발했다.
 

사건을 배정받은 서울 종로경찰서는 원점 재수사에 나섰다. 압수수색과 내부고발을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지난달 28일 H사 회장과 현재 D병원 원장인 J씨 등이 조세범처벌법 및 특경법을 위반한 사실이 의심된다며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어 지난 13일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충청지역본부는 D병원이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는 의료법 33조 2항을 위반해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H사와 O원장 양측은 현재 다수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경찰에 사건을 고발한 O원장은 “본인은 공모자로서 법적 책임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건의 진실을 규명돼 ‘병원 사냥꾼’인 H사가 마땅한 책임을 지고, 불법사무장병원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D병원 측은 O원장의 이 같은 주장과 관련해 반론서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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