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병원 내에서 정형외과 입지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수익성 순위에 밀려 냉대를 받은지 오래지만 최근에는 ‘중증도’라는 복병까지 만나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의료대란 사태로 수술방 배정이 힘겨워진 상황에서 위급성이 덜한 정형외과는 수술 건수까지 줄어 의료진들이 여러모로 심란한 모습이다.
대한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의정갈등 사태 이후 전국 대학병원에서 이뤄지던 슬관절 수술이 70% 가량 줄었다.
가뜩이나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인 기형적 수가체계로 홀대를 당하던 상황에서 의정갈등 사태까지 겹치면서 수술방 배정 조차 힘들어진 탓이다.
전공의 이탈 이후 대학병원들의 수술방 가동률이 평소 대비 60~80%로 떨어진 상황에서 위급성과 수익성에 기반해 수술방을 배정하다 보니 정형외과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은 정형외과의 시름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해당 사업은 상급종합병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중증진료 시스템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게 핵심으로, 병원들이 일반병상을 줄이고 중증진료 비중을 늘려야 지원금을 받는 구조다.
연간 3조3000억원, 3년 간 총 10조원의 재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중증진료 비중을 최대 70%까지 끌어올리면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문제는 정형외과의 경우 단편적인 질병 분류에 따라 중증질환에 해당하는 전문진료질병군 비중이 낮다는 점이다. 중증진료 비중을 높여야 하는 병원으로서는 달갑지 않다는 의미다.
근골격계 질환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중증도 구분 없이 단일 질병군으로 분류된 탓에 이번 상급종병 구조전환 지원사업 시행에 따른 입지가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일선 대학병원, 정형외과 병동 축소에 수술도 줄이고 있는 상황
일반병상 축소도 정형외과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증진료는 줄이고 중증진료는 늘리기 위해 지역 및 병상 수준에 따라 5~15%의 일반병상을 축소토록 했다.
이번 사태 전부터 다른 진료과 대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선 대학병원들의 정형외과 병동 축소가 이뤄져 왔던 점을 감안하면 그 추세는 더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다.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수가에 이어 중증도까지 부각돼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학병원 의료진 이탈이 가속화 될 것”이라며 “모두 떠나면 전공의 교육과 연구 기능은 멈추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왕년에 잘나가던 정형외과가 대학병원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면서 교수들이 자괴감을 토로한 것은 오래 전 얘기다.
때문에 학회나 개원가 등에서 수 년 전부터 정형외과 위기를 우려했음에도 관계당국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최근에는 ‘몰락’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
실제 환자 당 수술실 체류시간이 비슷하더라도 같은 시간에 1명을 치료하는데 벌어들이는 행위수익은 정형외과가 다른 외과계의 절반 수준이다.
대한정형외과학회가 발표한 ‘정형외과 의료현황 분석 및 수가방안 제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 당 수술행위 수익에서 정형외과는 외과의 40~80% 밖에 되지 않았다.
학회는 전체 수술에서 정형외과 수술 수익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기 위해 전국 10개 대학병원 진료과별 수술 수익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수술시간 기준 정형외과 수술이 전체 수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누적평균 수익성을 살펴보면 전체 수술실 수익은 7%였지만 정형외과 전체 수술 수익은 -16%였고, 정형외과 수술수가로 따지면 수익이 -52%였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한다. 정형외과 상위 10대 수술수가 평균 수익은 -40%였다. 흑자를 내는 수술은 ‘척추고정술’이 유일했다.
상위 11~20대 수술수가 평균 수익은 –44%였다.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