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 기자] 하나의 안건을 두고 전체를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현 수가체계 상 ‘심층진찰료’가 갖는 의미는 크다. 대형병원 쏠림현상 극복을 위한 방안이자 3분진료 개선책으로 거론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층진찰료는 국내 의료전달체계의 고질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상황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세부내용을 들여다봤다.
병원 규모가 곧 의료 질을 뜻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했고 경증환자도 대형병원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재인케어가 실시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구체화됐고 여러 폐단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행위별수가제의 가장 큰 맹점인 3분진료를 타파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짧은시간 동안 환자를 봐야하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고착화 되면서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는 경증환자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진료시간은 최대한 짧게 잡아야 했고 환자들을 많이 받는 것이 순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임상현장에서의 본질적 흐름은 정반대로 흘러야 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본인의 증상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말하고, 의사 역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치료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OECD 소속 11개국의 평균 진료 시간이 17.5분으로 이러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국내에서는 극복이 어려운 과제였지만 서울대병원이 ‘15분 진료’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고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출발점에는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있다. 2015년 10월부터 목요일 오후 초진환자를 대상으로 1시간에 3~4명 정도 환자를 진료하는 15분 진료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좋았다. 15분 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15만 6272 만원이었던 반면 진료시간이 짧은 환자들의 평균 진료비는 20만4005원으로 집계됐다. 진료시간이 길어질수록 검사 건수는 감소하고 환자 회송률은 높아졌다.
이러한 효과는 제도적 지원이 발생하는 시범사업으로 전환됐다. 지난 2017년 9월부터 시작돼 현재는 전국 상급종합 병원 25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심층진찰 전반적 만족도 상승은 긍정적 지표
심층진찰 시범사업을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곳도 서울대병원이다.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가 심층진찰 개념을 국내 진료체계 속에 확장시켰다면 권용진 공공의료 사업단장은 제도권 내 시범사업 현황을 분석하고 진단을 내리고 있다.
먼저 권용진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2017년 10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서울대병원의 심층진찰 시범사업으로 내원한 대상환자 373명 중 응답자 274명과 일반 진료를 받은 대조군 14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진료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심층진료군이 92%. 대조군이 71%로 심층진료군이 21% 높았다.
외래진료 자체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에 9.04점, 대조군이 7.65점으로 1.39점의 차이를 보였다. 진료 내용 측면에서는 검사량과 처방약제량을 조사했는데 진단검사량은 심층 진료군이 대조군에 비해 전체적으로 적었다.
범위를 넓혀 권용진 단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뢰를 받아 ‘진찰료 체계 개편을 위한 심층진찰료 도입방안 연구용역(2단계)’ 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 성인환자에서 심층진찰군이 대조군에 비해 모든 진찰 행위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심층진찰 재선택 의사를 측정한 결과, 심층군은 80%가 다시 심층진찰 받을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진찰 후 의사 설명에 대한 주관적 이해도를 측정한 결과 심층군은 79.2%, 대조군은 27.4%가 이해했다고 답했다.
심층진찰 수진 시 추가비용 부담에 대해 심층군은 평균 12만 7507원을, 대조군은 평균 5만8277원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해 심층군의 추가 비용 부담금액 평균이 높게 나타났다.
일련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심층진찰을 기반으로 한 뚜렷한 성과가 도출됐다. 의료전달체계 확립도 가능하고 불필요한 검사도 줄어드는 긍정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표가 지속적으로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관건은 수가로 최대 10만5922원?
고질적 쏠림현상을 극복하고 의뢰회송 활성화까지 가능한 심층진찰의 의미는 부여됐다.
결국 본 사업 전환을 두고 수가체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진찰료 체계 개편을 위한 심층진찰료 도입방안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는 원가 기반 분석이 나왔다.
외래진료과 수익률은 5.7%였지만 외래진료실 원가의 수익률은 ?35.7%로 나타났다. 즉, 진찰 행위만 했을 때는 손실이 컸고 검사와 처치를 포함했을 경우에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에 보고서는 “기본수가와 정책수가를 더해 심층진료 수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바텀 업(botton-up) 방식으로 심층진료 15분을 설정해 원가를 설정하면 6만0876원으로 나왔다.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원가는 7만1000원으로 조사됐다.
이를 기반으로 정책수가를 더하면 최소 6만1742원부터 최대 10만5922원으로 심층진찰료 수가가 산출된다는 공식이 나온다.
심층진찰료가 본사업으로 전환돼 수가체계로 들어오게 되면 기본수가 조정기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 마련이 중요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보고서는 “수가결정구조는 상대가치점수와 별도로 복지부 고시로 운영하거나 상대가치점수 연동+건강보험정책 심의위원회를 통해 비정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심층진찰료는 우선적으로 상급종합병원 대상 제도권 진입이 고려되고 있으며 합리적 수가체계 형성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정책 설계→상급종합병원 중증질환·동네의원 만성질환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심층진찰료 개념을 중증질환으로 규정하고 동네의원에는 만성질환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큰 틀에서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이 그려지는 것이다.
내과계 중심의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과 외과계 수술 전후 교육상담 시범사업을 통합하는 개념으로 ‘의원급 만성질환 교육상담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복지부 구상이다. 물론 핵심은 심층진찰료다.
이번 사업은 기본 진료행위와 별도로 환자에게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교육이나 집중적 진찰을 한 경우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시범사업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부터 1년 이상, 최대 3년간 시행한다. 심층진찰료 적용 대상은 고령자, 동반상병자, 복합상병자, 대형병원 치료 후 회송 환자 등으로 정해졌다. 대상 질환을 제한하지 않고 급여기준에 해당할 경우 산정해 줄 방침이나 1일당 청구 인원은 제한키로 했다.
심층진찰료 역시 교육상담료와 같은 2만4,590원으로 정하되 진찰료는 별도 산정하지 않는다. 횟수도 의사 1인당 1일 4회로 국한할 예정이다.
전체 의원의 5%인 1500곳이 시범사업에 참여하면 연간 약 118억원의 재정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는 진료 여건상 교육상담이 가능한 수준의 의원(의사 1인당 일 진찰 건수 50건 이하)을 고려하고 실제 참여도를 50%로 가정해 산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 사업을 통해 환자 자가관리능력 향상과 일차의료 활성화 및 의원급 신뢰도 제고라는 ‘일거삼득’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진찰시 상대적으로 시간 투입이 많은 분야에 대해서는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때 기본진료료를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