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빨리 수술해주세요. 하는 김에 검사도 다 해주세요."

"암환자가 아니라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미리 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갑상선초음파, PET/CT, 뇌 MRI, 췌장 CT, 종양표지자 검사 다 해주세요."

의학계가 이처럼 진료현장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검사와 처방 행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과잉진료' 자정 입장을 천명했다. 

15일 오후 고려대학교에서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주최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 심포지엄 2022'이 열렸다. 한림원이 지난 2016년 도입, 2020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진행 중인 '현명한 선택(Choose Wisely)' 캠페인에 참여하는 학회가 금년 28개로 늘었다.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각 학회가 불필요한 진료 자제 등 내용을 담은 권고 항목을 5개 내외로 개발,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홍보하는 것이 골자다. 

심포지엄에서 왕규창 의학한림원장은 "의료 공급자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이 사업을 통해 근거에 기반한 진료행태를 추구해 안전한 치료에 기여한다"며 "의료진이 과도하게 방어진료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신경과학회 ▲대한간학회 ▲대한고혈압학회 ▲대한중환자의학회 ▲대한통증학회 ▲대한혈관외과학회 등 7개 학회가 새로 개발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다음은 각 학회별 적정 진료 권고안이다. 

▲응급의학회

1. 세균에 의한 인후염, 혹은 바이러스 감염 이후 이차적 세균감염이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한 단순 상기도 감염에서 항생제 사용을 최소화한다. 

2. 유효한 의사결정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단순 외상성 목 통증 환자에서 경추 CT검사 지양한다.  

3. 환자의 임상증상과 경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 소변 검사 처방을 최소화한다. 

4. 임상 경과를 확인하거나 진단 및 치료 목적 외에는 불필요한 도뇨관 삽입을 지양한다. 

5. 단순 복통 환자에서 일상적 검사를 위한 복부 엑스레이 처방을 최소화한다.  

▲신경과학회 

1. 허혈뇌졸중 환자에서 예방적 항경련제 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

2. 편두통 환자에게 마약성, 바비탈 약제를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다.

3. 다른 효과적 항경련제가 있는 경우 가임기 여성에게 발프로산을 사용하지 않는다.

4. 증상이 없는 경동맥협착 환자에게 경동맥내막절제술이나 스텐트삽입술을 일반적으로 권고하지 않는다.

5. 약물과용두통 위험을 고려해 편두통 급성기치료제를 월 10일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6. 뇌졸중이나 심혈관질환 병력이 없는 성인에게 예방목적의 일상적인 아스피린 사용은 권고하지 않는다.

7. 금단발작 환자에서 항경련제를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다.

8. 인지기능 및 부작용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 없이 치매 환자에게 일상적으로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 처방은 권고하지 않는다.

▲간학회 

1. 말기 간암 환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완화의료·호스피스 이용을 권유한다.

2. 만성 C형간염 완치 후 C형간염 재감염 위험인자가 없거나 간수치 이상이 동반되지 않은 경우에는 반복적 혈중 HCV RNA 검사는 권고되지 않는다.

3. 간경병증 환자에서 복수천자, 내시경적 정맥류 결찰술 및 저위험의 침습적 시술에 앞서 응고장애의 교정을 위해 fresh frozen plasma, vltamin K, 혈소판제를 일상적으로 투여하지 않는다.

▲고혈압학회

1. 여러 동반 질병이 있고 기대 여명이 제한된 노쇠 노인에서 적극적인 강압치료는 피한다.

2. 혈압강하와 심혈관위험도 감소에 도움이 되는 생활요법을 권고해주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3. 환자에 가정혈압 측정을 권고하고 진료실 혈압수치 만으로 혈압조절 상태를 평가하지 않는다.

4. 혈압이 잘 조절되던 환자에서 혈압이 오르는 경우 혈압이 상승하는 상황·조건이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약 처방만 변경하는 일은 피한다.

5.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는 환자에서라도 진료지침에서 권장한 기본검사를 매 년마다 시행하지 않고 단지 약 처방만 반복하는 일은 피한다.

▲중환자의학회

1. 임상적 근거가 없다면 인공호흡기 이탈(weaning)을 지연시키기 않는다.

2. 배양결과나 임상 증상이 없는 경우 광범위 항생제를 장기간 지속하지 않는다.

3. 자발 호흡(SBT)과 각성(SAT)에 대한 매일 평가 없이 기계환기 치료를 지속하지 않는다.

4. 패혈증 환자에서 원인병소 제거(source control)를 지연시키지 않는다.

5. 혈관 및 요로 카테터(catheter)와 같은 침습적 장치는 가능한 빨리 제거한다.

▲통증학회

1. 방사통이 없는 축성의 요통, 흉추통, 경부통은 근전도와 신경전도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다.

2. 회전근개 손상에 대한 평가를 위해 초음파 검사전 MRI를 우선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3. 비암성의 통증 환자들에게 일차 약제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지 않는다.

4. 충분한 보존적 치료 없이 일차적으로 유착 박리술이나 신경성형술 등과 같은 시술을 시행하지 않는다.

5. 이전 시술의 효과를 평가하지 않고 경막외 스테로이드 주사를 반복하지 않는다.

▲혈관외과학회

1. 중증하지 허혈이 아닌 대부분의 혈관성 파행환자에 대해 일차적으로 침습적 처치(우회로조성술, 혈관조영술, 혈관내 혈관성형술 또는 스텐트 등)을 하지 않는다. 발목-위팔 지수(ABI) 등 비침습적 검사와 약물치료를 먼저 시행한다.

2. 증상이 없는 대부분의 작은 복부대동맥류(직경 5cm 미만)에 대해 혈관 내 처치를 포함한 침습적 치료를 하지 않는다.

3. 증상이 없는 중등도 미만(60% 미만)의 편측 경동맥협착 환자에서 침습적 처치(경동맥 내막절제술, 스텐트)를 약물치료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4. 증상이 없거나 대복재정맥 또는 소복재정맥의 역류가 확인되지 않은 하지정맥류 환자에서 침습적 치료(발거술, 혈관 내 치료를 이용한 패쇄술)를 일차치료로 권하지 않는다.

5. 항응고치료 금기나 폐색전증 위험이 없는 하지 심부정맥혈전증 환자에서 폐색전증의 일차예방을 위해 대정맥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6. 투석에 문제가 없는 혈관통로에 대해 정기검사로 초음파나 혈관조영술을 하지 않는다.

"캠페인 활성화 위한 의협 참여·회원 공감대 형성 우선" 

학회들은 권고안 개발 과정에서 전(全) 회원들의 설문 응답률이 매우 저조했던 점을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정작 개발한 회원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으면 캠페인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학회는 2023년 춘계학술대회 때 별도 홍보 시간을 마련하거나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오승준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각 학회는 회원에게 알릴 수 있는 전파의 폭이 크지 않지만 의사협회는 수만명 회원과 연계돼 있어, 한림원과 함께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김웅한 의학한림원 기획이사는 "국민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서 이해시키고, 먼저 요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며 "스며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보이지만 개인병원에서 환자와 접촉할 때 폭발적으로 전파가 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의료진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기 위해 학회 회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조언도 제기됐다. 

곽정면 대한대장항문학회 진료권고안위원회 상임이사는 "현재 보험 적용, 적정성 평가 등으로 인해 모든 진료가 근거 기반으로 유도되고 있다"며 "그런데 또 뭘 더 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반감을 표하는 회원이 많았다. 회원들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좋은 리스트 개발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피력했다. 

이슬비 기자 (sbl@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