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 사태 이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정부의 태세 전환 움직임이 또렷해 보인다. 진료공백 장기화에 따른 여론 악화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확고했던 ‘2000명’이라는 규모는 물론 시점 유예 가능성까지 열어 놓는 등 불과 한 주 새 온도차가 확연하다. 의료계 압박 카드였던 각종 명령, 처분, 수사도 잠시멈춤 상태다.
다만 대통령실은 시시각각 의과대학 정원에 대한 입장을 번복하고 있어 의료계에서는 오히려 혼선을 가중시킨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계와 대화를 통한 의대 정원 조정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조 장관은 “갈등 해소를 위해 의료계와 대화해 가겠다”며 “더 합리적이고 통일된 대안을 제시한다면 정부는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경 발언과 태도로 의료계의 반감을 샀던 박민수 복지부 차관 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박민수 차관은 “이미 학교별 정원을 발표한 만큼 되돌릴 경우 혼란이 예상되지만 신입생 모집요강 확정 전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불변’을 고수했던 입장에서 급선회한 셈이다.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2026학년도 적용을 목표로 위원회를 꾸리자는 의료계 제안에 대해서도 “잠시 중단하고 추가 논의하는 부분에 대해 검토하겠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태 초반 강경했던 의료계 압박 수위도 소강 상태에 들어섰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업무방해죄 정범인 전공의에 대한 수사가 없는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 전‧현직 간부들의 혐의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전공의 집단행동 교사와 방조 혐의였다.
하지만 정작 당초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에 대해서는 복지부가 고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의협 간부들은 업무방해교사 혐의를 받고 있지만 정작 업무방해 주축인 전공의들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은 상황이다.
조지호 서울청장은 “고발 대상이 아니면 수사선상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며 “현재로서는 경찰이 먼저 수사를 개시할 가능성은 없다”라고 말했다.
복지부와 경찰이 의료계 압박 수위 조절에 들어간 가운데 대통령실은 연일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2000명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다. 정부 정책은 늘 열려있다”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의료계가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에 대해 “그동안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차기 회장은 “정가 의대 증원 관련 통일된 안(案)을 먼저 제시하고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정부에 공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