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이 '의료배상공제조합' 또는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의무가입토록 하는 법안이 22대 국회에서 재추진된다.
의료사고 배상 실효성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의료계와 손해보험업계 등 유관 단체 간 의견이 분분했고 결국 지난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이 재등장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의료분쟁조정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의료기관이 의료배상공제조합 또는 의료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의료사고를 배상할 여력이 없는 경우 임의합의나 조정·중재가 이뤄지더라도 배상 이행이 어려워 장기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사고 배상의 실효성을 높이고 의료분쟁이 민·형사 소송으로 확대되는 것을 완화해 의료사고의 심리적·경제적·시간적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의원이 구상한 대안은 의료기관이 의료배상공제조합이나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는 "의료사고 피해자에 대한 실효적 피해구제 수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상 의료기관은 민간보험사가 판매하는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하거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인가받은 의료배상공제조합에 가입해 공제료를 납부할 수 있다.
의료배상책임보험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담보조항에 해당하는 제3자의 신체장해나 사망 등 의료사고로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때 법률상 배상책임을 보험회사가 부담하는 구조다.
의료배상공제는 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민간보험사와 제휴해 상품을 구성한다.
가입률, 책임보험 33.2% 배상공제 33.7% ···의협 "의무가입 부추기면 브로커 양산 부작용"
모두 의료사고 발생 시 배상 여력 및 합의 중재를 이끌어줄 제3자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의무가 아닌 임의사항이다 보니 가입률은 모두 저조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민간보험사의 의료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전체의 33.2%(1만2317개소)에 그친다.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에 낸 2023년 기준 자료를 보면 가입 의료기관 수는 전체 병의원 3만7137개소의 33.7%(1만2519개소)다. 의원급에 한정하면 가입률은 32.8%(1만1701개소)로 더 낮아진다.
이 같은 선택지가 모두 의무화된다면 의료기관들은 보험료 또는 공제료를 지출해야 해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2023년 기준 연간 평균 배상공제료 납입액은 176만원 수준이며, 책임보험료 납입액은 약 255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가운데,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국회에서 발의된 같은 내용의 법안에 대한 의견을 조회한 결과에서 이번 이언주 의원안에 대한 반응도 예측이 가능하다.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은 "가입 의무화를 부추기면 보험사 간 또는 보험사와 공제조합 간 과도한 경쟁이 발생하고 브로커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를 마련해 의료인 공제조합 등 가입 여부와 연계될 수 있게 운용해 의료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해보험협회는 "두 상품을 동등한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민간보험은 선택사항으로, 공제상품은 의무사항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