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위로 치닫고 있다.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 등의 책임을 논하다가 결국 해법없는 극단적인 집안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오는 26일, 27일 하루 간격으로 열리는 회원총회와 정기대의원총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로써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의협이다. 두 갈래로 나뉘어진 의협은 당초 27일 개최 예정이었던 정기총회와 바로 전날인 26일 회원총회까지 열릴 것으로 예상돼 사상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의원회에 이어 전국 시도의사회장단까지 임총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하면서 노환규 의협회장과의 극한 대치는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서면결의서를 채택해 상임이사회에서 결의한 회원총회 개최 반대를 거듭해서 못 박고 있는 반면 노 회장은 정관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들며 회언들에게 총회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
4일 노 회장은 SNS에서 "의약분업을 저지하기 위해 2000년 의사들이 대정부 투쟁에 나섰을 뿐 2014년이 되기까지 의사들이 일어선 것은 지난 3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사실상 내부개혁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노 회장은 "수십년 동안 정부의 부당한 의료정책에 무기력하게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며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의협의 구조적인 문제도 큰 몫을 차지했다"고 평가했다.
우선, 시도의사회(지역의사회) 중심의 의협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노 회장은 "의협에는 회장과 상임이사회로 꾸려진 집행부가 있지만 여기에는 큰 견제세력이 있"며 "지역의사회가 의협의 실권을 갖고 있으며 집행부는 이들에 대한 아무런 통제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의원 운영위원회는 회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회무를 감시하고 간섭하면서 통제하고 수시로 모여 회의를 하며 지난 2년 동안 다섯차례 집행부를 질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금의 구조는 집행부와 지역의사회가 권한을 나눠갖고 있는 상황인데 엄밀히 표현하면 집행부의 권한이 1/3, 지역의사회의 권한이 2/3로 오히려 지역의사회의 권한이 더 크다"고 해석했다.
노 회장은 "물론, 지역의사회에 아무런 통제권이 없는 회장이 이 구조를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의사회가 화합할 수 있다"며 "대신 의협은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장이 힘 있는 의협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의사회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골자다.
노 회장은 "지역의사회 중심의 의협 거버넌스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의협이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원하는 전략대로 갈갈이 찢겨진 의협을 모습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의원회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3일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에서 ‘고문 자격으로 노환규 회장의 비대위 참여’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을 두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노 회장은 “대의원 운영위원회의 일방적 결정”이라고 잘라 말하며 “회장이 의결권도 없이 ‘회장이 배제된 비대위’에 참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본인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처사”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여기에 그는 “이미 대의원임시총회의 비대위 구성 의결사항에 대한 무효소송을 결의한 바 있는 의협 상임이사회도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팎에서 의료계의 자중지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뚜렷한 견해를 피력했다.
노 회장은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한계점과 문제점이 위기상황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라며 “4월 내 어느 쪽이든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도의사회 한 임원은 “의협 전 회원이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워 각 지역, 직역별로 대의원 을 책정해 100년 동안 대의원 제도를 운영해 온 것”이라면서 “이를 한 순간에 뒤엎자는 얘기인가”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노 회장은 정관 개정을 위해 사원총회를 열겠다고 얘기하는데 민법 제42조에 따르면 ‘사단법인의 정관 변경은 총사원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명문으로 못 박고 있다. 재적 2/3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사원총회에 의한 정관 개정은 10만명을 훌쩍 넘는 회원의 2/3 찬성을 얻어야 이뤄지는데 실제로는 헌법 개정보다 더 어렵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