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제37대 집행부가 반쪽자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 27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노환규 전 회장의 ‘보궐 및 차기 회장 선거 출마 불가’, 그의 측근이었던 임병석 법제이사, 방상혁 기획이사까지 ‘불신임’으로 결론나면서 대의원회가 그렸던 그림은 현실화됐다.
노환규 회장 "대의원회, 역사의 죄인이자 젊은 의사들의 죄인" 비난
결국 노환규 전 회장은 대의원회를 향해 28일 "오늘부로 존경을 거둔다. 잘못된 건강보험제도를 방치하고 침묵한 죄, 노력은 하지 않고 리더로서의 책임은 방기한 채 알량한 권력과 안위를 지키는 데만 골몰한 죄, 당신들은 죄인이다. 역사 앞에 죄인이며 젊은 의사들에게 죄인"이라며 비난 수위를 그 어느 때보다 높였다.
정총에서 중앙선거관리 규정 개정과 관련 표결결과, 불신임을 받은 회장의 선거 재출마를 금지하는 긴급동의안이 통과되면서 의협에 불어닥칠 소용돌이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단연, 눈에 띄는 점은 “특정인을 염두한 것 아니냐”는 일부 대의원들 간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5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받은 경우 5년간 출마를 금지토록 하는 안이 가결됐다는 점이다.
노환규 전 회장이 의협 회장으로서 복귀할 경우의 수도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차후 노 전 회장의 선거 출마 가능성을 염두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대로 선거관리규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원천봉쇄됐기 때문이다.
기존 대의원회發 정관 개정안은 전날(26일) 법정관심의위원회 회의 결과에 따라 다뤄지진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긴급동의안 가결로 사실상 대의원회의 권한은 더욱 강력해졌다.
긴급동의안 잇따라 가결…현 집행부 감시·견제 더욱 강해질 듯
임병석 법제이사, 방상혁 기획이사와 달리 명맥을 이어가게 된 김경수 직무대행, 최재욱 상근부회장, 강청희 총무이사, 송형곤 대변인 등 집행부에 대한 대의원회의 견제 역시 철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또 다른 대의원이 제출한 긴급동의안에 따르면 만약 노 회장이 임총 결과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및 무효 확인소송 등이 진행될 경우, 즉시 그 사안을 대의원회 의장단에 알리고 처리 역시 함께 하자는 것이 요지다.
이 긴급동의안 역시 채택됐다. 앞서 변 의장은 “의장단이 모두 맡는 것도 부담스럽다. 집행부와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떠한 생각인가”라며 “법원에서 재판에 관한 서류가 의협에 온다면 즉시 대의원회 의장에 알려야 하는데 김경수 직무대행에게 의사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경수 직무대행은 “끝까지 그러시는 군요. 제가 그냥 그만 둘까요”라는 표현까지 하며 한숨을 내쉬며 이 같은 동의안이 발의된 것 자체와 의장단이 대답을 재촉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결국 ‘울며겨자먹기’식의 답변이 나왔다. 김 직무대행은 “직무대행으로서 최대한 중립성을 지키고 싶다”면서 “갑자기 이렇게 대답을 요구하니 당황스럽다. 하지만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 안내가 온다면 의장단에게 알리고 함께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요원한 대의원회 개혁…대통합혁신위원회 회의적 시각도
대의원회 개혁은 더욱 요원해 보인다. 변 의장이 대통합혁신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지만 각론적인 부분에서 이견이 상당하다.
대의원회 개혁의 필요성은 변영우 의장도 공감 의사를 표시했지만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날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대의원 직선제, 시도의사회 임원의 대의원 겸직금지, 회원총회 및 회원투표 정관 근거 마련 등 집행부측 정관 개정안은 전날(26일) 대의원들로 구성된 법정관소위원회에서 모두 상정이 기각됐다.
반대로 김경수 직무대행과 최종욱 상근부회장의 정식 인준을 제외하면 사실상 노 전 회장은 물론, 임병석 법제이사, 방상혁 기획이사의 탄핵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유태욱 대의원은 피선거권 제한을 담은 긴급동의안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옥 중 당선되는 국회의원도 있다. 지도자를 뽑는 것은 민초 회원들의 몫”이라면서 질타한 바 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노환규 전 회장은 본인의 SNS에서 “방상혁 기획이사와 임병석 법제이사의 불신임이 최종 통과됐다”며 “특히 불출마를 여러 차례 선언했는데도 불안했는지 본인 한 사람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선거관리규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전 회장은 “오직 1명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규정을 바꿨다”면서 “사원총회를 통한 대의원 해산, 대의원 재선출, 정관개정 등 원래 계획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대의원회에 선전포고했다.
“회원들 인정하지 않는 대통합, 악습 반복될 것”
노환규 전 회장은 28일이나 29일, 의협 회장 불신임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불신임된 방상혁 임병석 두 임원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도 이번 주 내 접수할 예정이다.
대의원회에 대한 분노감은 극에 달해 있는 모양새다.
노 전 회장은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희생하며 앞장서 헌신해온 방상혁, 임병석 이사를 격려하고 포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전혀 정관에 부합하지 않은 이유로 불신임으로써 해임시킨 행위는 무효로 판명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특히 노 회장은 “이를 추진한 대의원들은 의료 역사 속의 명백한 죄인들로 기록될 것이고 본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대의원들이 회원들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기에 집행부에서 올린 대의원 직선제, 시도의사회 임원 겸직금지, 회원총회와 회원투표 근거마련 등 정관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회장은 “변영우 의장은 ‘대통합’을 외쳤다. 하지만 회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그들만의 대통합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악습과 나쁜 관행이 이어질 뿐”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