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연구팀 "환각 증상 치료법 개발 기대"
"뇌(腦) 속 GPS 세포, 유도된 환각에도 반응" 국제학술지 발표
2024.04.15 07:56 댓글쓰기

(서울=연합뉴스) 나확진 기자 = 우리 뇌 안에서 GPS(위치정보시스템)처럼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격자 세포'(grid cell)가 실제 장소 이동 없이 유도된 환각에도 반응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 문혁준 박사 연구팀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올라프 블랑케 교수 연구팀과 함께 다중감각 가상현실(VR)을 이용해 자기 위치 환각을 유도하고, 이로 인한 뇌 속 격자 세포 활성의 변화 관측에 성공했다고 14일 밝혔다.


뇌 속 격자세포와 장소세포(place cell)는 우리가 특정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반응해 우리 위치를 좌표 형태로 인식하고 공간 내 사건들을 기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사람은 이른바 '유체이탈' 등과 같이 실제 몸이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몸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순수인지적 위치 이동이 일어났을 때 뇌 속 격자세포와 위치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그동안 연구하기 어려웠다.


두개골을 열고 전극으로 격자·장소 세포의 활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순수인지 과정의 인간 GPS 세포 활성에 관한 연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동물실험으로는 이 같은 인지를 유도하거나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혁준 박사 연구팀은 순수인지적 환각에서 격자 세포의 활성을 관측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VR 기술과 다중감각 신체 신호 자극을 결합해 다양한 위치와 방향으로 자기 위치 변화 환각을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측정된 MRI 신호를 통해 격자세포 변화를 분석했으며, 각 피험자의 환각 경험은 실험 후 질문지와 그들이 경험한 자기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된 행동 지표를 통해 확인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환각에 의해 유도된 자기 위치에 대한 순수인지적 변화가 그에 상응하는 격자 세포의 활성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는 실제 위치의 이동 없이 다중 신체 감각 자극만으로 자기 위치 환각과 격자 세포 활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한 임상시험 결과라고 KIST는 전했다.


또 이번 연구로 인간 뇌 속 GPS 좌표가 신체의 물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지 활동과 경험에 따른 위치 정보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뇌 영상 분석을 통한 환각 증상의 객관적인 진단 가능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KIST는 이번 연구 성과가 유체 이탈 등의 환각 증상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표적을 제시해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문혁준 박사는 "1인칭 시점의 시각적 환경 단서의 변화에 의존해 왔던 기존 인간 격자 세포 연구와 달리 다중 신체 감각의 통합이라는 주요 연구 요소를 새롭게 제시했다"며 "다양한 정신질환이나 신경 질환으로 인한 환각 증상의 뇌 기능적 메커니즘 이해를 통해 증상을 억제할 수 있는 신경 자극 치료를 개발하기 위한 후속 국제협력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스위스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국제학술지 'PNAS'에 3월 게재됐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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