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신 진료지침을 국내 비후성 심근증 환자에게 적용할 경우 불필요한 치료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고위험군을 감별하려면 ‘위험인자 개수’와 ‘심근변형’ 지표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추후 제정될 국내 진료지침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이상철 교수,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이현정 교수 공동연구팀은 미국심장학회 진료지침 성능을 분석하고, ‘심근변형’의 급사 예측력을 평가한 연구결과를 24일 발표했다.
급성 심장사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후성 심근증은 심장근육이 두꺼워지는 심근질환이다. 200~50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며 증상이 없어 다른 검사 중 우연히 진단되기도 한다.
2020년 발표된 미국심장학회 최신 진료지침에서는 7가지 급사 위험인자 중 1개 이상 가진 환자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며, 이들에게는 이식형 제세동기 삽입술이 권고될 수 있다.
연구팀이 이 진료지침을 국내 비후성 심근증 환자 1416명에게 적용하자 44%가 1개 이상 위험인자를 갖고 있었다. 즉, 10명 중 4명 이상은 제세동기 삽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로 급사에 이른 환자는 100명 중 4명에 그쳤다. 5년 5개월 간 추적 관찰한 결과, 3.3%(43명)에서 급사 등이 발생했다.
이는 미국 진료지침을 그대로 따를 경우 불필요한 제세동기 삽입술을 받는 환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로, 제세동기는 합병증 유발 가능성이 있어 더욱 정확한 고위험군 예측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국내 환자만을 대상으로 ‘위험인자 개수’에 따른 급사 위험 예측력을 분석했으며, ‘위험인자 2개 이상’일 때부터 급사 위험이 유의하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심근 수축 기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심근변형(strain)’도 급사 위험을 예측할 수 있었다. 심초음파로 측정되는 심근변형은 심장 수축 시 세로로 줄어든 정도를 의미하는 지표다.
전체 연구집단에서 다른 변수를 조정했을 때 심근변형이 저하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급사 위험이 최대 4배 높았다.
이들 중 ‘위험인자 1개’ 그룹만 분석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심근변형이 저하된 환자가 급사 위험이 유의하게 늘어났다.
연구팀은 비후성 심근증 환자들 중 급사 고위험군을 보다 정확히 감별하려면 ‘위험인자 개수’와 함께 ‘심근변형 저하’ 여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각각의 급사 위험인자는 급사 위험에 단독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반면, ‘좌심실 박출률 50% 미만’은 예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험인자만 단독으로 가진 경우 급사 위험이 약 9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형관 교수는 “미국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불필요한 제세동기 삽입술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며 “급사 위험을 신중히 판단하고 심근변형 저하를 주의 깊게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 비후성 심근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며 “이를 근간으로 향후 국내 비후성 심근증 진료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심장학회 아시아 공식 학술지 ‘미국심장학회지:아시아(JACC:Asia)’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