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자살 논의 과속, 의협 선(先) 용어정리 필요"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 "연명의료 중단·조력자살은 방향도 뜻도 다르다"
2022.09.17 06:42 댓글쓰기

우리나라 '의사조력자살' 논의가 관련 용어 정리도 되지 않은 단계에서 지나치게 빠르게 논의되고 있어 의료계가 용어 정리부터 나서야 한다는 역할론이 제기됐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16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폴리시 초청 특강에서 '안락사 논쟁의 전제조건'을 주제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의사가 말기환자 죽음을 돕는 일명 '조력존엄사법'이 지난 6월 발의된 이후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허 교수는 "현재 연명의료 중단, 조력자살, 안락사, 존엄사 등 관련 용어가 종교적, 법적, 의료적, 국민인식 측면에서 전부 혼재돼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용어의 불분명함으로 인한 혼란은 지난 2009년 벌어진 故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와 故 김수환 추기경 존엄사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허 교수에 따르면 김 추기경과 김 할머니는 둘다 "상태가 악화됐을 때 인공호흡기를 끼우지 말라"는 취지의 의사를 표명했으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김 추기경은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서 연명치료가 유보된 경우고, 김할머니는 기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연명치료를 중단, 작고했으나 사회적으로는 각각 자연사와 존엄사로 인식되며 논쟁이 인 바 있다.  


안락사와 존엄사도 다른 개념으로 지적된다. 허 교수는 "소극적 안락사는 행위적 관점에서 의사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고 존엄사는 가치적 관점에서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구분했다. 


여기에 안락사 조차 자발적, 비자발적, 반자발적, 적극적, 소극적 등으로 저마다 가치가 반영된 주관적 용어들로 쓰이는 실정이라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허 교수는 "환자가 살아있는 한 계속 주는 산소마스크와, 인공호흡기는 의학적으로는 다른 개념이나 일반인들은 잘 구분하지 못해 혼란이 크다"고 용어 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력자살과 연명의료는 다른 방향, 논의 지나치게 빨라"


이렇듯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행위에 대한 개념도 안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명 단축을 위한 의료행위 논의를 서두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허 교수의 입장이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결정과 의사조력자살·안락사는 방향성이 다른데 동일선상에 놓고 뭉뚱그려 존엄사 등의 개념으로 서둘러 논의되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에 따르면 환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의료인이 개입하는 상황은 ▲임종기 연명의료중단 ▲말기 연명의료중단 ▲식물·치매 상태 연명의료중단 ▲의사조력자살 ▲안락사 등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연명의료결정을 합법화한 범위는 세계 각국이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부터 임종기 연명의료중단만 허용돼 가장 보수적인 편이다. 


이미 전단계가 합법화된 서양 일부국가들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앞서고 있는데, 연명의료중단 합법 범위가 2000년 '말기'에서 무려 19년 만에 '식물상태'까지 허용되도록 바뀌었다. 


이에 허 교수는 "혼자 자살하는 것에 대해 본인에게 죄를 물릴 수는 없다"면서도 "의사가 임종기 연명의료 중단만 하도록 허용된 나라가 말기, 식물상태 등은 건너 뛰고 벌써부터 의사가 자살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러한 쉬운 자살 조장에 대해 현장 의료진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라며 "또 고령층에게 찾아가 '아직도 살아계시냐'고 물어보는 현대판 고려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허 교수는 마지막으로 "임종의 의료화 논의에 의협이 주도적으로 나서 정리하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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