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갈 경험이 많지는 않겠지만, 국민들이 우리나라 중환자실 수준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까요. 가장 취약하고 위중한 환자가 모이는 곳인데 전문 인력이 없습니다. 지난 3년 간 코로나19 환자는 물론 일반 환자들도 초과사망했다는 건 우리나라 중환자의료가 붕괴됐다는 의미입니다."
중환자의학계가 국가적 화두인 '필수의료' 합류를 위해 본격 시동을 걸었다.
그간 특정 질환 영역으로 분류되지 않아 정부와 국민의 관심에서 소외돼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한 지난 3년 동안 '사망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사망한' 실상과 원인을 적극 알리겠다는 입장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회장 서지영)는 최근 '필수의료 중환자의료체계 개선'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2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목소리를 거듭 높였다.
서지영 회장은 "타 선진국 중환자실과 달리 우리나라 중환자실 대부분은 경험이 적거나, 또는 거의 없는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시설 수는 어느정도 되지만 인력이 없어 가동할 여유가 없다가 코로나19라는 외압으로 민낯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영삼 중환자의학회 연구이사가 분석한 '코로나19로 인한 초과사망과 중환자실 이용 현황'을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월 2000명 이상의 초과사망이 꾸준히 발생했다.
초과사망은 유행이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 예측되는 사망자 수와 실제 사망자 수의 차이다.
심지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1월부터 금년 5월까지 초과사망자가 4만7516명이었는데, 이중 무려 절반(49.2%)이 非 코로나19 환자였다.
김영삼 연구이사는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지 않았어도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으로 전환이 잘 되지 않았다"며 "중환자 경험이 없는 인력에 의해 치료가 이뤄졌고, 뇌출혈·심근경색 등의 중환자를 보던 의료자원이 코로나19 진료에 투입돼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현장에서 재원 중증환자가 3~400명씩 나올 때 초과사망을 예상하긴 했지만 데이터로 보니 충격이었다"며 "살릴 수 있었는데 체계가 감당을 못해 죽은 것"이라고 탄식했다.
"중환자의료라는 게 있느냐" 인식 저조가 발전 정체 불러
이 같이 곪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현 시점, 그동안 중환자의료체계가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로 학회는 중환자의학에 대한 저조한 인식을 지목했다.
특정 질환 치료행위가 아니기에 "중환자의료라는 영역이 있느냐" 질문부터 "중환자실은 병원이 알아서 할 일이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는 시각도 존재해왔다는 설명이다.
서지영 회장은 "중환자의료라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존 의료 발전 방향과 반대로 가는 분야"라며 "타 분야가 특정 과에서 특정 전문 진료를 수행하는 식으로 좁혀왔다면, 중환자의료는 시각을 넓혀 환자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독특한 분야에 대한 깊은 정책적 고민이 없던 탓에, 현장에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정체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홍석경 기획이사는 "중환자실에서 일어나는 환자 목욕, 자세 유지, 모니터링 등은 행위별 수가에 담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응급의료와도 사정이 비슷한데, 응급의료법이 생기면서 보전비용이 나오지만 중환자의료는 현 수가 체제로 보전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학회는 중환자의료체계 발전을 위해 단계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서지영 회장은 "이 시점에서 선진국 수준의 인력과 공간과 장비 모두 갖춘 중환자실을 다 갖자는 건 아니다"며 "지금까지의 체계처럼 수가 몇개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필수의료 영역으로 보고, 병원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치민 총무이사는 "중환자실 전문의 배치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는, 말도 안되는 현행 의료법을 개정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며 "응급의료법처럼 단독법도 과거에 추진하다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고려는 하고 있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