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어요"
"운동해야 하는 걸 아는데 왜 안하죠"
"살을 빼야 하는데 자꾸 먹게 됩니다"
"욕망과 우울 관리를 잘했지만 출산 후 분노와 우울에 빠졌습니다"
내분비내과 의사들이 이 같은 인간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지난 8일 '2023 대한내분비학회 춘계학술대회' 마지막날, 첫 인문학 세션인 '욕망과 스트레스의 뇌과학 : 인생에 호르몬이 필요한 순간'이 열렸다.
해당 세션에서는 서울의대 최형진 교수, 카이스트 김대수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관객 참여형 강연을 펼쳐 학회원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이날 던져진 의제는 '호르몬이 마음을 조절하는지, 마음이 호르몬을 조절하는지' 였지만, 무엇이 맞는지 갑론을박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과 고민을 나누는 시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학계에 따르면 뇌의 내분비 시스템은 몸 상태를 반영한다. 에너지가 충분하면 '렙틴' 등 포만감 호르몬을, 에너지가 부족하면 '그렐린' 등 배고픔 호르몬을 분비하고, 에너지 획득에 성공하면 '도파민'을, 실패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했을 때도 미래를 설계할 도파민이 필요하고 성공 속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이날 의제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다.
최형진 교수는 자신이 욕망을 연구하게 된 계기로 "달고 짠 과자를 먹고 왜 혈당이 올라가는지 묻는 행동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도파민 문제인지, 시상하부 문제인지, 그리고 호르몬은 무엇인지 생각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남성호르몬과 성욕, 임신 여성호르몬과 식욕 등의 상관관계를 보면 호르몬은 단순히 물질로서 신경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마음을 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약 등 플라시보 효과 기반해서 마음이 호르몬 조절 가능성"
김대수 교수는 최 교수의 반대 입장에서 주장을 펼쳤다. "마음에 따라 호르몬이 조절되는 현상이 많다"고 보는 그는 일례로 보호자가 아픈 아기의 배를 만지며 하는 말인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예를 들었다. 일명 위약(플라시보) 효과다.
그는 "엄마가 아이를 안심시키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이는 통증 억제 기능을 한다"며 "위약이더라도 환자가 낫는다는 믿음을 가지면 좋아지기도, 백신처럼 진짜 약이어도 겁을 먹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부작용을 낳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든 예시에 대한 의사들 임상 경험담도 쏟아졌다.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너무 오래 바라보면 나가더라", "환자를 너무 안심시켜도 안 오고 너무 엄격하게 말해도 안 온다. 플라시보 효과를 피하고 적절히 말하는 방법이 고민이다" 등이었다.
김민선 울산의대 교수는 "호르몬이 마음을 조절한다고 본다"면서도 "뇌를 탑 장기로 두고 나머지는 종속된 관점이 전통적 관점인데, 최근 과학 근거를 보면 세포들이 분비하는 것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엑소좀, 사이토카인 등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자율신경을 조절해서 도파민을 조절하고 치매에 도움이 되는 과정 등을 보면 전통적 개념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도움을 받고 싶어서 온 환자가 도움을 거부하는 상황, 계획 살인과 우발 살인 차이 등의 사례가 제시되면서 관객들이 '호르몬과 마음' 인과 및 선후관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계속 이어졌다.
강연 끝에는 '둘다 맞다'는 피드백도 나왔다.
한 학회원은 "인간은 우울감을 위로하고 싶어 포만감이 느껴져도 자꾸 먹고 구토하기도 하지만, 포만감이 느껴지면 스스로 그만 먹고 공복이 느껴지면 스스로 먹어야 한다. 본능도 마음도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청취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