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라고 편들어 달라는게 아니다'
2012.01.12 00:21 댓글쓰기
"나야 이젠 그만 뒤로 빠지거나 하면 되지만 새로운 젊은 의사들은 앞으로 계속 해야 하는데 과연 제대로 할 수 있겠냐. 그렇잖아도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고 범죄자 취급까지 당하는데 도대체 산부인과 의사들 보고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의료분쟁조정법,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우리나라에서 최고령은 물론 난산의 위험한 산모를 가장 많이 보는 의사를 꼽으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주산의학회 김암 회장(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오랜만에 만난 그가 혀를 끌끌 찼다. 긴급한 상황이 워낙 빈번하다 보니 연구실에서도 수술복 차림이 일상화된 그는 "요즘은 육체적 고충보다 심적, 정신적 공허함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한숨졌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일까. 산부인과 어려움을 듣던 중 요즘 정부와 산부인과를 비롯 범의료계 차원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관련 배상 질문을 하니 점잖은 김암 회장 얼굴이 상기됐다. 목소리 톤이 간간이 높아졌고 어이없다는 뉘앙스의 쓴웃음도 비쳐졌다.

그는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과실(잘못)이 없는데 왜 의사보고 그 책임을 인정하고 또 거기다가 배상까지 하라는 거냐. 그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김암 회장은 의료분쟁조정법의 잘못을 크게 두 가지만 짚자고 했다. 우선 분만은 아무리 잘해도 위험한 상황이 항상 상존한다. 더욱이 저출산시대 고령 산모들의 위험은 예상보다 많은데 잘못한 것 없는 의사가 왜 책임을 져야 하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료분쟁조정법에서 부여하는 준조사권 취지에 반한 조정이 오히려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무과실에 대한 증명을 의사가 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데 정말 어렵다는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읍소다.

"전공의 중도포기 기름 붓고 의사들 기운 빠지게 만들어"

김암 회장은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렇잖아도 전공의들의 중도 포기가 적지 않은데 기름을 붓는 격이 됐고 격무에 치이는 의사들을 기운마저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산부인과 의사이기 때문에 편을 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편타당하게 정책과 법을 제정하고 집행해 달라는 것"이라고 거듭 하소연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더욱 섭섭한 단면을 끄집어 냈다. 정부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의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야 말로 억울하기 그지 없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그는 "목숨 걸고 나라 지키는 군인처럼 사명감 하나로 분만장을 사수하며 모든 것을 감내해 나가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윤리의식이 결여된 잠재적 부도덕한 존재로 몰아간다는 것에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한 "정부는 아직 높다고 지적하지만 제왕절개율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는데 앞으로 정부가 개최하는 제왕절개 관련 회의 등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의사들이 갖은 고생 다하며 이 비율을 낮추고자 노력했는데 앞으로 이 같은 법이 통과되면 누가 그 힘든 과정을 거치겠냐는 것이다.

그는 더욱이 "제왕절개를 하면 의료사고 등을 방지할 수 있는데 의사들이 쉬운 길을 놔두고 누가 어려운 길을 가겠냐"고 되물었다.

김암 회장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은 커녕 범죄자 취급이나 하지 않았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올해 산부인과 지원율이 반토막 났는데 의료분쟁조정법 때문에 있던 젊은 의사들마저 그만 두지 않을까 걱정이 적지 않다"고 한숨을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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