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심각했다. 유례없던 감염병 대란 속에 중증환자들을 치료하는 대학병원들은 의료진의 보호장구 품귀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소독용 에탄올과 체온계 등 기본적인 물품부터 전신보호복, AP가운 등 감염병 현장에 필요한 필수 장비까지 대형병원들의 재고량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이었다.
데일리메디가 12일 수도권 주요 대학병원 10여 곳의 감염병 관련 물품 재고 상황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병원들이 조만간 비축 물량이 모두 소진될 위기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마스크였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만 하더라도 환자들에게까지 지급했지만 이제는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도 부족한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은 현재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1일 1개의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다. 진료 지원부서인 행정직의 경우 1주 당 2개를 제공한다.
병원은 마스크 비축량이 3일 분량 밖에 남지 않았고, 수급 상황도 여의치 않다고 판단해 이번 주부터 긴축 사용에 들어갔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1주일 정도의 재고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특히 보건용 마스크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등 다른 빅5 병원들 역시 마스크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마스크 확보에 어려움이 덜했던 이들 대형병원마저 수급난에 빠지면서 중증환자 치료에도 악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수술용 마스크 부족으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기구나 장비도 아닌 마스크가 없어 수술을 걱정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빅5 병원들은 아직 며칠 간 사용할 비축량이 있지만 다른 대학병원들은 더욱 참담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모습이다.
한림대의료원의 경우 의료진을 포함한 전직원에게 ‘마스크 수급난’에 대해 공지했다. 지금까지는 가까스로 유지했지만 앞으로는 의료진에게 공급할 마스크 확보도 불투명하다는 우려다.
경희의료원 역시 마스크 재고량 부족으로 의료진과 일부 직원들에게만 제한적인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보호장구의 경우 소독해 사용한지 오래다.
마스크 공적판매, 시작은 됐지만…
병원들의 마스크 수급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지난 6일부터 대한병원협회를 통한 공적판매에 들어갔지만 일선 병원들의 체감도는 여전히 부족 상태다.
대한병원협회 보건용 마스크 26만1959장과 수술용 마스크 40만6990장 등 총 66만8949장을 매일 전국 병원들에게 분배하고 있다.
접수 초기 병원들의 주문 폭주로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일선 병원들은 마스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병협 역시 원활한 마스크 공급을 위해 전직원이 주말도 반납하고 매일 밤 12시 넘는 시간까지 애를 쓰고 있지만 동시다발적인 전국 병원의 수요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실제 병협은 지난 9일 40만개 발주를 시작으로 10일 60만개, 11일 120만개, 12일 133만개 등 점차 발주량을 늘리고 있다. 당초 정부에게 배정 받은 66만개를 훌쩍 넘긴 물량이다.
병협 관계자는 “병원들의 마스크 수급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아직 공적판매 초기인 만큼 정상적인 수급까지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공적판매 조치로 마스크 구매 경로는 확보됐지만 수량이 제한적으로 배정된 탓에 병원들로서는 불만이 적잖다.
실제 마스크 판매량은 각 병원의 의료인력과 허가 병상수를 토대로 산정된다. 문제는 의료인력에 의료인, 약사, 의료기사, 사회복지사, 영양‧조리사 등만 포함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행정부서나 시설 등 기타 진료 지원부서 직원들에게 할당되는 마스크는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행정직 근무자들도 각 출입국에서 내원객 발열체크와 문진표 작성 등의 업무에 투입되고 있지만 이들은 마스크 신청 인력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유통망 확보가 어려운 중소병원과 선별진료소 및 안심병원에 우선 공급되는 탓에 상대적으로 순위가 밀린 대형병원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그 필요성에 공감은 하지만 대형병원의 경우 중증환자 비중이 높은 만큼 원내 감염과 의료진 보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공적판매 접수 후 기다리고 있는 심정은 일각여삼추”라며 “상대적 역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