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코로나19 발생, 장기화로 인해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시점에서 공공병원 설립 추진을 위한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9월 2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노조)과 정부 간 합의 이후 공공의료 확충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마련돼 공공병원 확충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병원 확대에 앞서 기존 공공병원 적자 해소 등 근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지방의료원이 없는 울산과 광주는 의료원 설립 추진 및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신청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울산시는 울산 인구의 5분의 1인 22만2251명이 ‘울산의료원 설립 범시민 서명부’에 서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현재 울산시는 울산의료원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 마무리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내달 복지부에 사업계획서 및 서명부를 제출하고 기획재정부에 예타 면제도 신청한다.
울산시와 마찬가지로 지방의료원이 없는 광주에서도 이달 6일부터 범시민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서명은 오는 10월 15일까지 진행된다.
특수목적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논의도 활발하다. 충남 아산시 경찰타운 내 제2 경찰병원 설립을 위해 충남도·아산시·이명수 의원(국민의힘)·강훈식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국립경찰병원은 서울 송파구 한 곳 뿐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아산 국립 경찰병원 설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향후 늘어날 경찰관들과 비수도권지역(중부권) 주민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감염병 등 재난 대응을 위해 거점 병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귀포시 공공의료 서비스 강화를 위해 분주하다. 지난 14일 JDC는 의료재단법인 KMI 한국의학연구소 유치에 성공해 내년 초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종합건강검진센터를 개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이를 두고 “의료영리화에 매몰된 행보로 건강검진센터 유치가 서귀포지역 의료서비스 여건을 개선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하는 등 잡음이 있는 상황이다.
기존 공공병원 적자 해소 과제 산적···총액예산제·대학연계 등 대안
기존 공공병원들의 경영정상화도 어려운 현 상황에서,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병원을 더 짓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때문에 공공병원 적자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공공병원들은 감염병 환자 치료 등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를 주로 담당하면서도 행위별 수가제도가 적용되고 있고, ‘독립채산제’ 또한 적용돼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독립채산제는 산하기관 재정을 모(母)기관 재정으로부터 분리해 운영하는 제도다.
관련 논의를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8일 허종식(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병원 착한 적자,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주최했다.
허종식 의원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공공의료기관 설립 초기 시설·장비만 지원하고 이후는 기관이 자생토록 방치했다”며 “지방의료원 뿐 아니라 특수목적 공공병원들 수준 향상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환자를 대상으로 돈을 벌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주문”이라며 “공공병원에 ‘총액예산제’를 적용해서 행위별 수가에 기반한 운영 방식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총액예산제는 일정기간(1년) 동안 제공될 의료서비스 총액을 미리 계약해 해당 범위 내에서 진료토록 하는 제도다. 정재수 보건노조 정책실장도 “공공병원 회계기준은 민간기업 회계 기준을 변형해 적용하고 있다”며 “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산편성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 활성화를 위해 대학과의 연계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28일 경찰병원 관련 토론회에서 이석구 충남의 의대 교수는 “공공병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립대병원처럼 옆에 대학이 있어야 하는데, 제2의 경찰병원을 경찰대학 부속 병원으로 만들면 좋은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경찰대학에 의대를 설치하게 되면, 의료진을 대학 교수 자원을 통해 충원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9.2 노정합의···70여개 중진료권마다 공공의료 확충·예타제 개편 등
한편, 지난달 초 노정합의안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 마다 1개 이상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케 된다. 지역주민의 강한 공공병원 설립 요청이 있는 지역의 공공병원 설립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기획재정부 등과 논의해 확정한다.
의정부의료원·영월의료원 및 삼척의료원 등 이전 신축을 지원하고, 마산의료원·서산의료원 등 400병상 이하 규모 지방의료원 등을 증축한다.
지역거점공공병원의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에 따른 공익적 적자원인에 대한 정책연구를 연내 완료하고,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익적 적자 해소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한다.
특수목적 공공병원의 설립목적·공익 활동에 따른 운영 실태 등을 점검하고 개선 지원방안도 세운다. 지방의료원 설립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예타 또한 연내 우선 개선하고, 예타 면제 법안 통과를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