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인재를 흡수하는 ‘블랙홀’이 돼버린 의과대학 정원 확대 영향에 대한 이공계·의학계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전면 반대하는 시각, 이공계 이탈을 최소화하는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시각, 반대로 기초의학자·의사과학자를 육성해서 의학계와 이공계 균형을 맞추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다양하게 피력된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의대정원 확대 연속토론회 2차 : 의대정원 확대로 인한 이공계 이탈현상’이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공·의학계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놨지만 “의대 정원 확대가 단순히 의사 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닌 이공계·자연계와의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의대 정원 확대를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다.
최세휴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 회장(경북대 공과대학장)은 “기술패권 경쟁 세계에서 현장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우수 인재들이 각 산업별로 고르게 분포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우수인력은 의대로 향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의대 정원이 늘면 서울대 공대에 내신 3등급도 들어가는 시대가 올 것이고,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의대 증원이 실현된다면, 이공계 이탈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의약학부 정회원)은 “반드시 지역인재전형 확대를 통한 증원이 수반돼야 한다”며 “지방의대 졸업생이 해당 지역에 남아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계 인력 줄어들면 의학계도 영향·연구 집중 환경 구축 필요"
연구하는 의사 입장에서 인력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철훈 연세의대 약리학교실 주임교수(연세대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 부단장)은 ‘인력 풀의 균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김 교수는 “의대 연구에서 가장 부족한 측면은 인력 부족이다. 인재가 더 오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며 “공학계 인재 풀이 줄어든다면 의학계도 영향을 받는다. 다른 분야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 확대, 인력 풀 싸움으로만 볼 문제 아냐
카이스트 과학기술의전원 설립을 추진 중인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은 ‘인재 균형’을 강조하면서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의사과학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이들을 길러낼 기초의학교실도 인력 유입이 없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안고 있다.
김 학과장은 “모두가 우수한 인력으로 다투고 있는데, 반드시 이공계의 위기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과학기술의전원 인원을 200명 늘리면 이공계 지원 인력이 2000명 늘어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학생들의 직업 선택을 다양성 측면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순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정책과장은 “개인적으로 의사과학자가 잘 육성되면 전체 이공계 측면에서 봤을 때 나쁜 현상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공계 이탈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공감을 표했다.
의사과학자 등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이들이 졸업 후 안착할 수 있는 연구환경도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강민구 前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전공의)은 “이공계 인재 이탈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의사와 처우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며 “예방의학·병리학 전공의들이 의사과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의 복리후생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前 회장은 “예방의학과 전공의는 단순 대학 조교 신분으로 분류돼 세전 연봉 약 15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며 “이들 소속을 의료원으로 변경해 타 전공의와의 차별을 시정하고, 병원에서도 진료중심 교원 및 연구중심 교원 등 나눠 선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