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기준 전공의 공백이 52일째를 맞이하며 의정갈등이 8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2대 국회에 역대급으로 많은 의사가 입성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20대 4명, 지난 21대 3명에 이어 이번 22대에는 8명이 당선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이 끝나는대로 국회에 '보건의료개혁특위'를 설치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이제는 국회가 의대 정원 논의를 주도하는 분위기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단 분석이다.
이에 여야 진영에 골고루 포진해 있는 의사 출신 당선인이 의대 증원과 관련해 앞서 어떤 의견을 표현했는지, 또 앞으로 어떤 중재안 및 해결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의사는 ▲성남시분당구갑 안철수(국민의힘) ▲서울강남구갑 서명옥(국민의힘) ▲경기오산시 차지호(더불어민주당) ▲비례 김윤(더불어민주연합) ▲비례 인요한(국민의미래) ▲비례 한지아(국민의미래) ▲비례 김선민(조국혁신당) ▲비례 이주영(개혁신당)이다.
이들은 모두 의대 증원에 직접적인 반대 의사를 표하지는 않았지만 숫자에 매몰된 현재와 같은 방식의 증원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쳐 왔다.
안철수 "의대 증원 1년 유예, 단계적 증원 추진"
최대 격전지였던 경기 성남시 분당구갑에서 당선, 4선을 하게 된 안철수 의원은 현재 의정 갈등을 정면 비판하며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정부 의대 증원이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해왔던 그는 이번에도 총선 결과인 국민 심판 뜻을 받들어 국정기조를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1일 안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하고 국민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며 "의대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도 경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의대 증원 전제조건으로 필수의료 인력 및 의사과학자 확보 방안, 지방의료 발전을 위한 법률, 의료수가 조정, 투자계획 등을 내놔야 한다는 게 안 의원 입장이다.
그는 "정부, 의사, 환우회, OECD 등 국제기구가 모인 의료개혁협의체에 미리 숫자를 정하지 말고 전권을 맡겨야 한다"며 "언제 어느 규모의 증원을 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 결론내리게 하자"고 제안했다.
김윤 "의대 증원 정치적으로 이용해 환자 고통, 최소 1000명 한 번에 증원"
국회에 첫 발을 들이게 되는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로서 의대 정원 확대 여론을 적극 조성해온 인물로 꼽힌다. 스스로를 '의사들의 공공의 적'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날 SNS에 "더 이상 정부만 믿고 있을 수 없으며, 국민과 환자와 국회가 함께 참여하는 민·의·당·정 4자 사회적 협의체를 빨리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의료개혁에 반드시 필요한 의대 증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무능한 정권 탓에 환자들은 고통받고 국민들은 불안하고 병원 노동자들 역시 피해를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또 "숫자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점진적 의대 증원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앞서 김 교수는 "최소 1000명은 한 번에 증원해야 하며, 만약 이번에 의대 정원을 500명 늘리면 나중에는 3000명 넘게 늘려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또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대란 대한민국 의료는 위기에 처해 있어 의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 체계를 개혁하는 일"이라며 "진짜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지아·인요한 "숫자 매몰돼선 안 돼" 이주영 "핵심 진료과목 보호 우선"
한지아 의정부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증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숫자를 정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의료계는 합리적인 선에서 의대 증원을 수용해야 하며, 대신 합리적인 요구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달라"고 동료 의사들에게 촉구한 바 있다.
또 정부를 향해서는 의사들을 악마화하는 것을 멈추라고 주문하며 의정갈등 중재에 나섰다.
한 교수는 "모든 전공의를 구속하고 형사처벌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증원할지 명확한 계획을 세워주고, 모든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달라"고 말했다.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은 최근 전공의들에게 비공개 면담을 제안하는 등 중재에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전공의들을 향해 "내가 당과 우리 정부, 대통령실에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증원 규모 2000명 조정 가능성을 내비친데 대해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며 이제 문이 좀 열린 것 같다"고 봤다. 그 역시 숫자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의료계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았던 이주영 前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도 의대 증원은 해법이 아니라는 시각을 내비쳐 왔다.
그는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운영, 핵심 진료과목의 정책적 보호, 중증·응급의료 인프라와 지역의료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선민 前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의대 증원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함께 추진하는 정책과 수용 가능성에 따라 증원의 적절한 규모는 달라진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