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패키지가 통과된다면 전문의 자격이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해 과감히 수련을 포기했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가 16일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년 차 레지던트가 전공의 과정을 포기한 이유를 전했다.
"부족한 지원과 가짜노동에 수련의 질(質) 하락"
류옥하다 씨는 지난 3월 13일부터 4월 12일까지 전공의 20명을 대상으로 서면 및 현장 인터뷰한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전공의들은 수련의 질(質) 자체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느끼고 있으며, 특히 저연차 전공의들은 실제 의료업무 외의 일에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1년의 인턴 과정을 마친 A씨는 "제모, 이송, 영상촬영과 같은 직종을 채용해야 할 대학병원이 전공의에게 이런 일을 부담하게 해 수련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년차 레지던트 B씨는 "의료업무가 아닌 인쇄, 커피 타기, 운전하기 등 '가짜노동'으로 인한 수련의 실효성 부족에 의문이 든다"고 힐난했다.
2년차 레지던트 C씨는 "개인의 사명감으로만 필수의료 진료과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수련과정의 내실은 더욱 줄어 사실상 펠로우를 강제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류옥하다 씨는 "미국의 경우 전공의 수련에 연간 20조원을 지원하지만 우리나라는 13억원에 불과하다"며 "1인 당 지원액도 미국은 1억5000만원, 한국은 1만200원"라고 비교했다.
이어 "전공의들은 전공의 수련 과정 중 필요한 공통역량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과도한 업무에 치여 추가적인 역량 개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사 '악마화'가 수련 의지 꺾었다"
류옥 씨는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는 데에는 "반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총평했다.
예비인턴인 D씨는 "이번 의료개악과 같은 일이 다음 정권에서도 반복될 것"이라며 "정권마다 의사를 악마화할 것이고 국민들은 함께 돌을 던질 것이기에 수련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1년차 레지던트 E씨는 "이번 사태가 마무리된다 해도 과연 의사에 대한 인식과 전공의 수련환경이 좋아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고 개탄했다.
또 2년차 레지던트 F씨는 "환자와 의사 간의 관계가 파탄났고, 이제 의사로서의 삶은 어떤 보람도 없을 것 같다"며 "국민들이 던지는 돌이 너무 아프다"고 토로했다.
앞서 류옥 씨가 지난 2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전공의와 의대생 1581명 중 34%가 차후 전공의 수련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책임 완화, 파업권 보장, 군의관 복무기간 단축"
류옥하다 씨는 "아직 전공의 중 절반은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도 그에 앞서 선행돼야 할 문제들을 전했다.
일례로 예비인턴 G씨는 "현역병은 18개월, 군의관은 38개월이다. 이런 군 복무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동료들도, 후배들도 전공의를 굳이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2년차 레지던트 J씨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무분별한 소송을 막아야 수련으로 복귀할 것"이라며 전공의 노조와 파업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번 사태 속에 문제가 된 업무개시명령 폐지와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에 대한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류옥하다 씨는 "전공의들은 가혹한 수련환경과 부당한 정부정책으로 '병원'을 떠난 것이지 '환자'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는 의대증원을 원점에서 재논의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