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지난 3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부의돼 오는 3월 30일 예정된 본회의가 초미의 관심사다. 의료계를 포함 범의료계의 격한 반대에도 법안들이 입법 단계에 성큼 가까워지며 추후 가능한 시나리오에도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국회서 법안 통과를 위한 투표를 하려면 당일 본회의에 안건을 올려야 하고(상정), 이에 앞서 그 안건을 본회의에서 다룰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부의).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현재 본회의 부의 단계까지 왔다. 언제든 여야가 날짜만 합의하면 그날 본회의 석상에 올려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제404회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은 재적 262명 중 찬성 166표, 반대 94표, 기권 1표, 무효 1표, 의사면허취소법은 찬성 163명표, 반대 96표, 기권 2표, 무효 1표로 부의가 가결됐다.
양곡관리법도 민주당 직회부 후 본회의 통과···국회의장 중재 가능성 주목
압도적인 찬성 표로 거대 야당의 힘이 확인된 가운데, 이날 본회의에서 여당의 강한 반대 속에도 통과된 '양곡관리법'에 대입해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의 운명을 예상해볼 수 있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로 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추진해왔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이는 국회법 86조 제3항을 적용한 것인데, 간호법 역시 9개월 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가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지난 2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민주당이 주도했다.
그런데 본회의에 직회부된 양곡관리법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본회의 표결이 미뤄진 바 있다.
간호법도 마찬가지로 본회의 상정에 앞서 국회의장이 중재, 이 일정을 미루고 여야가 의견을 조율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27일 본회의에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을 상정, 처리코자 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미뤄졌다. 두 차례 중재안 제시에도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3월 23일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여야 갈등 최고조···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 무게
설사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국회 최종 문턱을 넘더라도 정부 문턱을 넘어야 시행된다.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은 이제 대통령실로 넘어가는데, 현재로써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및 재의 요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여당 국민의힘 측은 "법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되면 거부권 행사 및 재의 요구를 대통령실에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헌법 53조에 따라 국회서 통과된 법안이 정부로 넘어오면 대통령은 15일 내 이를 공포해야 한다. 그러나 이의가 있을 경우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재의 표결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확보해야 하는 등 까다롭다. 이에 현재 야당 입장에서는 재의 대신 새 법안을 추진하는 선택지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거부권은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한 이래 현재까지 사용된 적이 없는데, 민주당이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로 끌고 간 법안이 한 두 건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이 같은 탓에 다음 본회의는 오는 3월 30일 예정돼 있지만 이날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명하)는 "민주당이 대통령 거부권을 의식해 4월로 간호법 논의를 미룰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사 등에 비수 꽂았다" 의협 비대委 병협 등 투쟁 수위 높일 듯
한편, 의료계는 이번 본회의 후 비통한 입장들을 쏟아내고 있다.
24일 의협 비대위는 "의사들이 분명 간호단독법과 면허박탈법으로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모두가 질병의 고통으로 신음할 미래를 경고했지만 끝내 민주당은 악법을 강행했다"고 성토했다.
이어 "2020년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해 일어선 의사들 단체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 민주당이 다시는 자신들에게 저항하지 못하도록, 의사들 목숨과도 같은 면허를 볼모로 잡는 법을 만들었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비대위는 이날부터 단식 투쟁을 해제하고, 비대위 로드맵에 따라 법안 저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 수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앞 천막 철야농성은 지속한다.
이날 대한병원협회(회장 윤동섭)도 공식 입장을 통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치 논리로 보건의료계의 혼란과 갈등을 만든 입법 강행 시도를 대통령이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병협은 "이번 국회 본회의 부의는 민주적 절차 없이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다수당의 횡포"라며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단체들과 투쟁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천명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동석)도 "의원 머릿수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야당 입법 독재를 막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만 남았다"며 "마지막까지 민주당 입법 독재에 대항해 의권과 보건의료 질서를 지키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가 가진 의미를 잘 헤아려 마지막 단계에서라도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