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관할 대학병원에 엄포성 공문을 보내 의료진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일선 응급의료 현장 의료진의 태업(怠業)으로 규정하는 듯한 행태에 의료진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의료인력난으로 사실상 소아응급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그나마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환자 수용을 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경기도 일산 소재 한 대학병원에는 최근 관할 시로부터 ‘응급의료기관 24시간 진료체계 운영 철저 안내’라는 제하의 공문을 받았다.
데일리메디가 입수한 해당 공문에는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과 관련해 소아응급환자 진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응급의료기관의 진료거부 불가와 관련한 응급의료법 내용을 상기시킨 부분에 의료진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실제 응급의료기관은 24시간 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시설, 인력, 장비를 운영하고, 공휴일과 야간에 당직 의료인을 둬 언제든 응급환자를 진료할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24시간 응급환자 진료의무를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 재정지원 중단, 수가 차감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응급의료기관에서는 진료시간 또는 연령을 제한하는 등 부적정 진료거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응급환자 생명과 건강 보호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해당 공문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각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응급의료기관 24시간 진료체계 정상 운영을 관리, 감독하라는 주문에 따라 기초 지자체가 관할 대학병원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즉 전국적으로 각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해당 내용의 공문이 전달됐거나 전달될 예정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의료진, 특히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가뜩이나 최근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대구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수사를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공분하고 있는 응급의학과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반응이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 벌어진 응급실 관련 사건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재에 기인한 것은 단 한건도 없었음에도 정부는 모든 책임을 의료진에 전가하려 한다”고 힐난했다.
이어 “소청과 전문의 부족으로 휴일이나 야간 진료가 이뤄지지 못한지 오래”라며 “이러한 상황을 무시한채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고 윽박지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설령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더라도 최종 진단이나 입원은 소청과 전문의가 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소청과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응급환자 진료의무를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 재정지원 중단, 수가 차감을 받을 수 있다는 협박은 결국 응급의학과를 겨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 소아 응급의료체계 붕괴와 관련해 부모들이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책임을 물어 달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소아 응급의료체계 붕괴는 의사와 환자 간 갈등을 방치한 복지부와 지자체에 책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45곳 중 12곳만 소아 응급환자를 365일 24시간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마저도 12곳 중 8곳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