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특수의료장비규칙에 따라 주 5일(40시간) 근무해야하는 영상의학과전문의가 근무시간을 전부 채우지 않았어도 영상판독 업무를 부족함 없이 이행했다면 전속인력으로 인정,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근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원격판독을 한 영상의학과 전문의에 대해서도 전속인력으로 인정하는 등 진료행위 자체의 질적 담보와 무관한 내부지침에 의거한 환수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이채롭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9행정부(재판당 김시철)는 최근 지방 A병원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및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2년 지방에 있는 A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 B씨는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게 됐다. 당분간 치료에 집중해야 했던 B씨 사정을 고려한 병원은 일시적으로 유연근무를 허용했다.
이후 B씨는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 주 2~3회 출근하며 주당 15~25시간 정도 일했다. B씨가 유연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병원은 MRI와 CT 등 의료장비를 관리를 전문업체와 B씨 본인에게 맡기며 품질관리검사에서도 적합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건보공단과 복지부는 A병원이 관련규칙을 위반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고 영상판독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을 환수처분했다.
구 특수의료장비규칙 등이 정하는 전속인력으로 인정하기 위해선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40시간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심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 원심은 ‘상근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의사와 병원이 상시 근로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회 통념상 기간제 의사와 구별될 정도로 근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B씨 경우 출근한 날에 8시간을 근무했다 하더라도 주당 근무시간이 16~24시간에 불과해 격일제나 기간제 의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B씨 변호인단은 우선 요양급여환수처분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의료기관이 특수의료장비를 운영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특수의료장비규칙 설치인정기준은 품질관리나 등록에 대해서만 정할 뿐 인력기준에 대해선 명시하지 않은 점을 짚었다.
이에 따라 ‘자기공명영상 촬영장치의 경우 1인 이상의 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둘 것’이란 요건을 지키지 않았어도 이는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상의학과전문의가 일정한 시간 병원에 출근해 근무하지 않았어도 전문관리업체의 관리를 받고 적합판정을 받았다면 요양급여를 수급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같은 변호인단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내부지침(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운영지침)은 인력기준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 효력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특수의료장비 관련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담당하는 의료영상 품질관리는 반드시 병원에 출근해야만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업무로 보기 어렵다”며 “품질관리적합판정을 받고 의사가 판독을 성실히 수행했다면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를 수급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사건에선 B씨가 영상품질관리를 게을리해 영상품질이 저하됐거나 판독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며 환자에게 적정한 치료가 이뤄지게 하려는 요양급여의 취지를 해치지 않았다고 판단, 1심 판결을 취소했다.
이 사건을 맡은 한진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법원의 최근 경향은 진료행위 자체의 질적 담보와 관련없는 주무부처 내부지침에 따른 환수처분의 적법성을 입체적으로 따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히 특수의료장비의 영역에선 이같은 취지의 판결이 반복되며 일정 부분 법리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앞서 원격전송프로그램으로 영상을 판독한 영상의학과 전문의 사건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나온 바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 변호사는 “그럼에도 개별 사건마다 판단을 다를 수 있으므로, 행정처분에 대한 법적 대응시에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사건에서 복지부와 공단, 그리고 행정처분을 내린 지자체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