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김민수 기자] 지난 9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고한 ‘의료기기 허가‧신고‧심사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고시(안) 행정예고’를 놓고, 의료기기 업계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원안대로 확정할 경우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 제한으로 대체 의료기기 공급이 지연돼 올해 초 불거졌던 인공혈관 부족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21일 식약처에 따르면 해당 고시안은 신의료기기 개발 업체(선행 업체)가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은 경우 후발 업체는 임상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허가를 득할 수 있는 현행 임상자료 심사 제도의 일부 미비점을 개선하기 위해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식약처는 “본질적 동등성 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기술문서 검토 대상 품목을 지정·공고해 허가 시 임상자료의 제출 대상 및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고, 임상자료 제출 대상인 경우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식약처가 표면적으로는 국민 건강을 위한 안전성·유효성 검증 강화와 선행 업체의 기술력 보호 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임상시험 의무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국회에서는 선행 업체의 허가증을 무분별하게 복사·제출해 최종 허가를 받은 후발 업체 사례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A사 임원은 “당연히 선행 업체의 권리 보호를 위한 조치는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특허권 강화와 같은 법률적 조치가 아닌 임상시험 의무화가 엉뚱한 보완책으로 나온 것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임상시험 의무화 도입에 대한 식약처 의지가 워낙 강해 업계의 반대 의견이 과연 얼마나 반영될지 의구심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각에서는 해당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국내 제조사들의 신제품 개발이 더욱 까다로워져 의료현장에서 사용되는 고난도 제품 대부분이 수입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개정안이 임상시험을 최소화하고, 동등성 제품의 안전성 입증에만 집중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동향에도 어긋난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보건의료 시장에서 특정 기업의 독과점 횡포를 예방하고, 환자의 의료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상시험 의무화가 아닌 동등성 제품 인정 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게 업계 측 분석이다.
B사 임원은 “이번 개정안처럼 동등성 제품 인정 제도를 폐기하려는 것은 현 문재인 정부의 규제 개혁 취지와도 어긋난다”며 “우리나라보다도 의료기기 관리가 엄격한 미국, 유럽조차 수정·보완하는 규제를 새롭게 만드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이번 개정안이 최근 안전성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건이 생기면서 식약처가 불가피하게 내놓은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C사 임원은 “사후관리나 문제 발생 시 행정처분이 낮은 국내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결국 허가기관(식약처)이 선택 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 돼 있어 사전 ‘허가’ 단계에서 요건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선행 업체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점은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규제 편의적인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 있는 단체 또는 개인은 오는 29일까지 식약처로 찬반(贊反) 여부와 사유를 담은 서류를 제출할 수 있다.
C사 임원은 “얼마 전부터 의료기기 업계 종사자들이 모이면 이 내용을 꼭 나눌 정도로 파장이 엄청나다”며 “정부 당국이 업계 의견을 반드시 수렴해 실질적으로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고, 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내길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