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글로벌 로봇시장 규모는 300억 달러(한화 35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재활로봇 시장은 수술로봇 다음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018년 6억4100만 달러 규모에서 2025년 65억 달러 규모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할 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시장 중 하나다.
재활로봇 시장은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제품이 주를 이뤘는데 근래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가 자국 제품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국가 차원의 투자에 주력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물론 독일·중국 등 의료로봇 대규모 연구개발 집중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국가로봇계획(NRI)를 추진, 한 해에만 2억22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독일도 연간 3억 유로(한화 약 3800억원)를 IT와 의료 융합서비스로봇 분야에 지원 중이다.
중국은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 요강’에 따라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비스로봇과 수술로봇에 약 300억 위안(한화 4조9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또 하얼빈공업대학을 비롯해 상해교통대·북경항공대·시안대학 등 주요 대학에서 산학협력을 통해 보행 등 재활훈련 보조로봇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첨단기술로서 부가가치가 높다는 산업적 장점을 제외하더라도 재활로봇은 치료 영역에서도 장점이 많다.
환자가 로봇의 도움을 받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정량적 훈련을 훨씬 더 많이 반복할 수 있으며 의료진 부담도 덜어 준다. 시간당 운동 횟수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제 지향적인 훈련에도 유용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재활로봇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신성장 프로젝트 일환으로 '비지니스 창출형 서비스 로봇' 개발 사업을 기획 중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혁신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로봇 개발뿐만 아니라 보급 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국립재활원은 올해부터 3년간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을 시행하며 재활로봇 및 의료로봇과 부속품 등을 지원한다. 산업부도 돌봄로봇 5000대 보급과 함께 금융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한국, 병원들 고가장비 구매 후 운영할수록 손해 보는 현실
그러나 재활로봇 시장에 쏟아지는 국가적 관심에 비해 현실은 초라할 정도로 삭막하다. 국내 업체들은 현재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실정이다.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로봇 제조 전문기업 큐렉소 관계자는 “기존 수기치료에 비해 재활로봇 치료 효과가 훨씬 우수하지만 같은 수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고가 재활 장비에 예산을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업체로서는 판로 자체가 막혀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큐렉소 모닝워크는 기존의 트레드밀 위에서 평지 보행운동만 하는 외골격형로봇 재활치료 방식을 탈피, 독창적인 안장-발판형 구조를 채택함으로 환자에게 평지, 계단 등 다양한 보행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로봇시스템이다.
실시간으로 지면반발력 측정 값을 파악하는 센서를 비롯해 가상현실(VR) 기능까지 더해 재활 효과를 높인 제품이다. 정부의 재활로봇 보급 사업을 통해 현재 11개 대학병원에서 사용 중이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보행재활의 경우, 현행 보험수가는 1회 30분을 기준으로 약 1만3000원 내외를 인정하고 있다.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로봇장비를 구입해 사용하더라도 동일한 수가를 받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장비에 투자를 할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여러 보행 재활로봇 제품이 신의료기술 평가를 신청했지만 로봇을 이용한 치료방식이 기존 기술과 동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큐렉소 관계자는 “모닝워크는 보행치료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수많은 임상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첨단 기술이 집약된 제품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얼마나 더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다른 업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재활로봇 ‘워크봇’ 개발 기업 피앤에스미캐닉스 관계자는 “신체 다관절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은 우리 제품이 유일하다. 기술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서도 “실제 수요자 측면에서의 지원이 없다 보니 기업으로서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워크봇은 재활 치료 전후 환자의 지면 반발력을 계산해 훈련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관절, 슬관절, 족관절 등 다양한 관절의 기능을 각각 보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보행재활로봇 보급사업 초기에 기술심의위원회로부터 ‘재활로봇시범사업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로봇’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피앤에스미캐닉스 관계자는 “로봇은 개발 후에도 업데이트를 통해 최신 기술을 반영하지 않으면 제품력을 보증할 수가 없다. 워크봇 또한 R&D 투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판매 실적이 거의 없어 기업이 버티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 진출도 만만치 않다. 각 나라마다 자국 로봇기업 발전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불리한 위치에서 경쟁해야 한다”며 “치료 장비로서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수가 등 정책적 측면서 시장을 더 확대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답답함을 피력했다.
“국내 업체들 생존 사활, 현재로써는 행위조정 신청이 유일한 해법"
로봇 장비가 임상 현장에서 실제 활용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막대한 R&D 투자도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며 버티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마저 사업을 접게 된다면 다른 치료재료 분야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점유할 가능성이 자명해진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유일하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행위조정 신청이다. 특히 임상적 효과가 확인된 뇌졸중 환자에 대한 로봇치료만이라도 적정 수가를 확보코자 하는 상황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발병 후 6개월 이내 뇌졸중 환자에게 집중 보행치료를 시행할 경우, 장애 1등급에서 초기 집중재활치료군의 개선율은 60.4%로 비집중재활치료군의 50.6%보다 9.8%p 높다.
또 초기 집중재활치료를 받은 환자는 환자 당 약 441만 원, 국가 전체로는 약 4627억 원의 간병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밖에 올해 개최된 대한뇌신경재활학회에서 발표된 뇌졸중 환자의 로봇재활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기존 치료와 함께 재활로봇을 동반할 경우 하지 기능이 크게 향상된다는 결과가 나오는 등, 뇌졸중 초기 집중재활치료에 보행재활로봇을 이용하면 높은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여러 논문을 통해 입증됐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궁여지책이 아닌 재활로봇 산업 전반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큐렉소 관계자는 “병원의 고가 재활로봇 장비 마련의 첫 전제는 적정한 보험수가 적용에 따른 투자회수일 수밖에 없고, 이는 또한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로봇을 개발했음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는 할 수 있는 일이 행위조정신청 뿐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국내 업체들이 생태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