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백성주 기자] 최근 불거진 일회용 점안제 논란을 계기로 기등재 의약품 재평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검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2년 대규모 일괄 약가인하 이후에도 전체 의료비 중 약제가 2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제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비효율적인 운용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지난 2006년 도입된 ‘선별등재제도(포지티브리스트)’가 비용효과적인 의약품만을 선별 등재해 약가 거품을 없앤다는 당초 목표와는 달리, 한 번 급여목록에 등재되면 반영구적인 특권을 가진다.
희귀의약품을 비롯해 신약의 도입 약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특권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정부는 동일한 고민으로 지난 2007년, 선별등재제도 도입 전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목록정비 사업을 추진했으나 사실상 실패, 일괄 약가인하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 바 있다.
일회용 점안제 2400억 vs 희귀의약품 3200억
우리나라 의료비 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OECD 주요 국가 중 약제비 비중이 20%를 상회하는 나라는 이탈리아 등 일부에 그친다.
반면 영국을 비롯해 노르웨이와 스위스, 스웨덴, 일본 등의 약품비 비중은 10%를 하회한다. 나머지 국가들도 대체로 15% 이내 비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발사르탄 사태와 일회용 점안제 일괄 인하 논란은 선별등재제도의 부정적인 측면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 재평가를 요구하는 측의 주장이다.
비용효과적인 의약품만 선별적으로 등재해 리베이트와 그로 인한 약가 거품을 없앤다는 것이 당초의 취지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특권만 부여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2012년 단행된 일괄 약가인하와 함께 동일성분, 동일효능, 동일용량의 의약품에 동일한 상한액을 책정하는 약가 정책이 시행되면서 계단식 약가제도가 사라지고 후발주자들도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돼 가격 경쟁이 무의미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연간 의약품 공급금액 50억 미만인 제약사들이 30%에 이르고, 100개 이상의 품목을 공급하는 업체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제약사들이 난립해 있다.
지난해 정부와 제약계가 대립각을 세웠던 일회용 점안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의약품 유통구조가 일회용 점안제의 시장규모를 2000억대로 키웠다는 분석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일회용 점안제 청구액 규모는 약 2400억으로 환자부담금을 더하면 3000억을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희귀질환제에 소요되는 건보재정 약 3200억원과 유사한 규모다.
시장규모 큰 특허만료 의약품···“효용가치 줄어든 약제, 재평가 필요”
무분별한 제네릭 의약품의 난립 뿐 아니라 특허만료 의약품의 지속되는 특권도 논란의 대상이다. 동일성분, 동일효능, 동일용량의 의약품에 대한 동일약가 부여 제도가 오히려 오리지널 선호현상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실제 일괄 약가인하 이전에 특허가 만료됐음에도 원외처방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리피토는 연간 1500억대의 처방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 내 매출액을 뛰어넘는 수치다. 리피토만의 사례가 아니다. 적지 않은 특허만료 의약품의 국내 처방실적이 자국 내 매출액 보다 더 큰 것이 현실이다.
원외처방 시장에서 리피토와 함께 1000억대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쌍벽을 이루고 있는 비리어드 역시 미국 내 매출액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가 글로벌 2% 수준에 불과하다며 규모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고 주장하지만, 일단 진입하면 사실상 반독점 시장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기등재 의약품에도 정기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로 등재되는 신약들이 기존 약제와 비교해 혁신성을 앞세우는 만큼, 효용성이 줄어든 약제들에 대해서는 재평가를 통해 약가를 인하하거나 급여목록에서 제외하는 기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은 “한해 점안제에만 들어가는 건보재정이 2400억원으로 매년 400억원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희귀질환치료제 건보급여 규모와 비교해 우선순위가 맞을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재평가 기전이 현재로선 전혀 없으니 방법이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 새로운 재정투입 요소가 들어오면 말단 순위는 퇴출되는 기전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