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의료기관에 대한 강압적인 현지조사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의료계 목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사전 통보 없이 진행되는 현지조사가 정당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행법은 1주일 전 언제 어떠한 내용으로 현지조사가 진행될 것인지를 알려야 하는데, 사안에 따라 증거인멸의 가능성 등이 있다면 사전 통보 없이도 조사가 가능하고 이에 따른 처분 또한 적법하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재판장 박형남)는 약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영업정지 및 약사면허정지 취소 청구를 각각 기각했다고 29일 밝혔다.
앞서 A약사는 실제 환자가 처방을 받은 의약품보다 고가인 대체의약품을 제조해 980만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이유로 업무정지 10일과 면허정지 15일 처분을 받았다.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복지부)는 A약사가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의약품을 대체 처방한 의심을 받는다며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현지조사단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4월 사이 A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의 의약품 보유량과 요양급여 비용 청구량을 조사해 비교한 결과, 처방한 의사에게 알리지 않고 성분과 함량 및 제형이 동일한 의약품을 대체 처방한 사실이 밝혀졌다.
A약사가 조제한 대체의약품은 원래 의사가 처방한 약보다 가격이 더 저렴했다. A약국은 이렇게 대체조제한 의약품으로 약 980만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은 약효동등성이 인정된 의약품이라도 처방전과 다를시 처방의사로부터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 복지부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A약사에게 10일간의 업무정지처분과 함께 약사면허를 정지처분 15일을 내렸다.
그러자 A약사는 현지조사 과정에서 복지부가 사전통지를 하지 않고 절차를 위반했다며 소를 제기했다.
A약국은 "조사명령서를 발송한 후 2일만에 곧바로 현지조사를 나와 소명자료를 준비하는 등의 대비를 하지 못한 채 현지조사에 임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튿날 조사담당자에게 조사가 너무 급박하게 이뤄져 자료를 준비하지 못했으니 재조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으며, 강압적 분위기에서 조사가 이뤄졌다고도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행정조사를 실시하기 전에 조사기관은 조사기관 7일 전까지 출석요구서와 자료 제출요구서 및 현장 출입조사서를 조사 대상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복지부가 이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현지조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현지조사에서 A약국의 처방전 의약품 부족분의 실제 구입 여부 및 처방전 의약품과 대체조제 의약품의 각각 제고량과 관련 장부 등 A약국의 실제 의약품 관리 및 보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런 사정을 미리 알게 될 경우 처방전 의약품과 대체조제 의약품을 각각 상당량씩 긴급히 확보함으로써 마치 약을 실제로 보유하는 듯하게 만들어 현지조사에 대비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될 경우 현지조사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판시했다.
A약사의 재조사 요청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또 현지조사 종료 후 원고의 재방문 요구에 응할 의무나 사전통지 후 원고의 자료제공 요청에 응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행정기관조사기본법 제17조 제1항 단서, 같은 항 제1호는 현지조사를 사전에 통보했을 때 조사대상자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행정조사의 개시와 동시에 출석요구서를 제시할 수 있게 한다.
이어 재판부는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청구 의약품이 가격이 대체 의약품의 가격보다 높아 대체조제의 경제적 동기가 존재한다”며 현지조사단의 절차에 위법성이 없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