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우리 몸의 지방 조직은 어떻게 뇌와 소통할까?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혈액에 섞여 떠다니는 호르몬이 지방조직의 스트레스나 대사 작용에 관한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지방조직엔 이런 정보를 뇌로 보내는 뉴런(신경세포)이 따로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역할을 하는 건 지방조직에 분포한 '체성 지각 뉴런'(somatosensory neuron)이었다. '체성(體性) 지각'은 눈ㆍ귀 같은 감각기 이외 감각을 말한다. 이 발견은 뇌가 수동적으로 메시지를 받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방조직을 살펴본다는 걸 시사한다.
인체 건강과 질병 발생에 지각 뉴런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실렸다. 샌디에이고 라호야((La Jolla)에 위치한 스크립스는 세계 최대 민간 생의학 연구기관으로 꼽힌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서 지방조직은 '충전식 건전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쓰고 남은 에너지를 지방세포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방출하는 것이다.
지방조직은 공복감이나 물질대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유형의 호르몬과 신호 분자를 제어하기도 한다. 지방조직이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당뇨병, 지방간, 아테롬성 동맥경화, 비만 등이 올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은 지방조직에도 신경이 분포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뇌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지각 뉴런은 지방조직까지 퍼지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대신 지방조직에 있는 신경은 거의 다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에 속할 거로 추정했다.
교감신경계가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일으키면 '지방 연소 경로' 스위치가 켜진다. 강도 높은 신체 활동을 하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몸 안의 지방이 타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지방조직 신경의 유형과 기능을 확인하는 건 기술적으로 어려웠다.
스크립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이미징(imaging)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HYBRiD'로 불리는 이 기술은 생쥐 모델의 조직을 투명하게 바꿔 지방조직의 신경 분포를 추적하는 데 적합했다.
그동안 짐작했던 것과 달리 지방조직에 분포한 뉴런 가운데 거의 절반은 교감 신경계에 연결돼 있지 않았다.
실제로 뉴런이 이어진 곳은 모든 지각 뉴런이 발원하는 뇌의 '배근신경절'(dorsal root ganglia)이었다.
지각 뉴런이 지방조직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확인하는 데도 'ROOT'라는 신기술이 이용됐다. 정해진 신경 표적을 바이러스로 공격하고 변화를 관찰하는 일종의 '노크 아웃'(knock-out) 실험 기법이었다.
연구팀은 지방조직의 뉴런을 소그룹 단위로 파괴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했다.
뇌가 지방조직으로부터 지각 정보를 받지 않을 땐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으로 전환하는 것에 관여하는 교감 신경계가 활발해졌다.
이런 프로그램이 지방세포에서 높은 수위로 활성화하면 갈색 지방이 유난히 많은, 보통보다 큰 지방체(fat pad)가 생겼고, 다른 지방과 설탕 분자가 분해되면서 열이 발생했다.
실제로 지각 뉴런이 막히고 교감 신경계 신호가 강해진 생쥐는 체온이 상승했다. 이는 지각 뉴런과 교감 신경계가 정반대의 기능을 한다는 걸 의미한다.
교감신경계가 지방 연소와 갈색 지방 생성의 스위치를 올리면, 지각 뉴런이 이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를 맡은 리 이에(Ye Li) 교수는 "몸 안에서 지방이 탈 때 이들 두 유형의 뉴런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지방조직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뇌와 지각 신경의 신호 교환이 핵심이라는 건 분명해졌다. 하지만 지방조직의 지각 뉴런이 정확히 어떤 메시지를 뇌에 전달하는지를 아직 모른다. 향후 연구의 초점은 이 부분에 맞춰질 거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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