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루게릭병'으로 더 많이 알려진 '근 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은 수의근(의지대로 움직이는 근육)을 제어하는 뉴런(신경세포)이 소멸하는 퇴행성신경질환이다.
초기엔 손과 손가락, 다리 등의 근육이 약해지다가 나중엔 말하거나 음식물을 삼키는 것도 어려워지고 호흡 장애가 오기도 한다. 약 10% 환자는 유전적 특징을 보이지만 대부분 산발적으로 발병한다.
병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만큼 근원적인 치료법도 없다. 환자의 약 90%는 진단 후 3∼4년 더 생존한다.
이처럼 불치병에 가까운 ALS 진행을 획기적으로 늦추는 실험적 치료법이 개발됐다. 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신경아교세포와 이 유형의 교세포가 만드는 신경 영양 인자를 이용하는 치료법이다.
세포 치료와 유전자 치료를 병행하는 이 치료법은 ALS 환자의 뇌와 척수에서 운동 뉴런을 보호하는 효과를 보였다. 이런 ALS 치료법을 놓고 실제로 임상 시험이 진행된 건 처음이다.
미국의 시더스-시나이 메디컬 센터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5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논문으로 실렸다.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되는 이번 연구의 핵심 도구는 줄기세포다. 다른 방법으론 어려운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통과도 줄기세포 덕분에 가능했다.
연구팀은 ALS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1차(phase 1/2a)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사용된 줄기세포는 원래 'GDNF'(신경아교세포 유도 신경 영양 인자)라는 단백질 생성을 목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이 단백질의 주 임무는 뇌나 척수의 신호를 운동 근육에 전달하는 신경세포(운동 뉴런) 생존을 돕는 것이다. ALS에 걸리면 운동 뉴런을 지지하는 신경아교세포의 힘이 약해지고, 운동 뉴런이 점차 퇴행해 근육이 마비된다.
연구팀은 운동 뉴런이 손상된 중추신경계 영역에 GDNF 생성 줄기세포를 이식했다. 그러자 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신경아교세포가 GDNF를 분비해 운동 뉴런의 생존을 도왔다.
원래 GDNF는 혼자서 혈뇌장벽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이식으로 혈뇌장벽을 우회하기로 했다. 이식한 줄기세포에서 GDNF를 만드는 신경아교세포가 분화했으니 결국 GDNF를 직접 투입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났다.
ALS 환자는 대체로 두 다리의 근력을 비슷한 비율로 상실한다. 연구팀은 환자의 한쪽 척수에만 줄기세포를 이식한 뒤 1년간 추적 관찰했다. 치료받지 않은 다른 쪽 척수(실제론 다리)와 비교해 줄기세포 이식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이식으로 GDNF 생성 신경아교세포를 척수에 전달했을 때 다리 기능에 어떤 부정적 영향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심각한 부작용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신경아교세포가 목표 지점을 이탈해 척수 상부의 '지각 영역'(sensory area)'까자 올라간 환자가 일부 나았다. 이러면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클라이브 스벤센 생물의학 교수는 "ALS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치료법 개발에 다가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근본 치료가 불가능한 ALS이기 때문에 이 정도 증상 완화 치료만 해도 큰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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