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사람을 포함한 동물 세계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진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우호적이고 다정한 친사회적 행동도 강화해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에모리대 부부 신경과학자인 오브리 켈리·리처드 톰슨 교수팀은 14일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 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서 모래쥐(Mongolian gerbil)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공격적 행동과 우호적 행동을 모두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켈리 교수는 "테스토스테론이 한 개체의 공격성뿐 아니라 비성적(非性的)·친사회적 행동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테스토스테론이 동물들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친사회적 행동과 반사회적 행동 사이에서 빠르게 전환하도록 돕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사람에 대한 대다수 연구에서 공격적 행동을 강화하는 것으로 밝혀진 테스토스테론이 친사회적 행동을 약화시키는 역할도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연구팀은 '테스토스테론이 친사회적 행동이 더 적절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모래쥐에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다음 짝짓기 상황과 침입자 등장 상황에서 이들의 행동과 호르몬 변화를 관찰했다.
모래쥐는 짝짓기할 경우 파트너 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하며 새끼들을 함께 기르는 습성이 있다. 수컷은 짝짓기할 때나 영역 방어 상황에서는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만 짝짓기를 한 다음에는 파트너 껴안기와 새끼 보호 같은 행동을 많이 한다.
첫번째 실험에서는 짝짓기한 뒤 암컷에게 다정한 행동을 보이는 수컷에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뒤 공격적 행동이 증가하거나 친사회적 행동이 줄어드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이 수컷 모래쥐는 테스토스테론 투여 후에도 여전히 암컷을 껴안는 등의 친사회적 행동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토스테론 투여가 곧바로 공격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어 일주일 뒤 짝짓기를 한 암수 모래쥐가 살던 우리에서 암컷을 빼내고 대신 낯선 수컷(침입자)을 넣었다.
켈리 교수는 "보통 수컷은 자기 우리에 들어온 다른 수컷을 쫓거나 피하려고 한다"면서 "그런데 짝짓기 후 테스토스테론을 투여받은 수컷은 침입자에게 더 우호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수컷에게 다시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뒤에는 이 수컷의 행동이 침입자 쫓기와 회피하기 같은 행동을 보이는 등 갑자기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켈리 교수는 "수컷이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상대 수컷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수컷 모래쥐가 파트너와 있는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투여받아 친사회적 행동이 강화됐고 이런 행동은 침입자 들어온 상황에까지 이어졌다면서 하지만 두번째 테스토스테론 투여는 침입자라는 상황에 맞게 수컷이 공격적으로 변하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이 연구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과도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테스토스테론을 투여받은 모래쥐의 뇌 내 옥시토신 활성이 테스토스테론을 투여받지 않은 쥐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켈리 교수는 "지금까지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의 활동이 뇌에서 겹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몰랐다"며 "이 연구 결과는 두 호르몬이 친사회적 행동을 촉진하는 데 함께 작용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테스토스테론이 상황에 맞는 행동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테스토스테론이 짝짓기 상황에서는 상대를 껴안고 새끼를 보호하는 행동을 강화하지만 침입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공격적인 성향을 증폭시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동연구자인 톰슨 교수는 "인간의 호르몬과 호르몬이 작용하는 뇌 부위는 (모래쥐들과) 같다"며 "테스토스테론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른 동물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이해하면 인간 두뇌에서 이런 물질들이 주변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반응을 결정할 때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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