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특히 위험한 암이다. 효과를 기대할 만한 치료법이 마땅치 않아 5년 생존율이 9%에 불과하다. 이런 췌장암 환자와 가족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췌장암이 두 개의 큰 전환점(transition point)을 거쳐 발달하고, 이런 단계에 이르기 직전에 세포의 특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상세히 밝혀냈다.
첫 번째는 정상 세포가 전암(前癌) 세포로 변하는 지점이고, 두 번째는 전암 세포가 초기 암세포로 발달하는 지점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어떤 특징을 가진 세포가 전암성 세포로 변하는지 확인한 것이다. 이 발견은 아예 췌장암이 생기지 않게 싹을 잘라내는 근원적 예방 치료가 가능하다는 걸 시사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의대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2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논문으로 실렸다.
췌장암 발달 과정의 세포 상태 전환점 2개도 발견
암 종양 발달 과정에 이런 전환점이 존재한다는 걸 상세한 단계별 특징과 함께 밝혀낸 건 처음이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딩리(Li Ding) 유전학 석좌교수는 "더 효과적인 췌장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선 먼저 건강한 세포가 어떻게 암으로 변하는 성질을 갖게 되는지 이해해야 한다"라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새로운 췌장암 치료법을 개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인간 종양 아틀라스 네트워크'(Human Tumor Atlas Network)라는 혁신적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진행됐다. 연구 자금은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프로그램에서 지원했다.
과학자들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췌장암 환자 31명의 종양 샘플 83점을 놓고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합성 등을 심층 분석했다. 이를 통해 종양 발달이 암 치료를 받은 횟수 등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상 세포가 췌장암 세포로 변하는 동안 세포의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는 두 개의 전환점도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팀은 전환점에 도달한 세포의 상세한 특징을 알아낸 것에 고무돼 있다. 무엇보다 현재는 정상이지만 그냥 두면 암이 될 수 있는 전암성 세포의 특징을 규명한 게 중요하다고 한다. 췌장암 발생 자체를 차단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췌장암엔 효과가 없는 이른바 '면역 관문' 항암 치료법(checkpoint immunotherapy)의 개선 전략을 제시한 것도 중요한 성과다.
면역 관문' 억제제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신호 분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유형의 면역 항암제를 쓰면 암세포가 채워 놓은 족쇄가 풀려 킬러 T세포 공격력이 회복된다.
그런데 다른 유형의 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신호 분자를 췌장암 세포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신호 분자를 이용한 치료제에 췌장암 세포가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킬러 T세포가 췌장암 세포를 식별하게 유도하는 신호 분자 조합을 찾아냈다.
췌장암 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신호 분자 2개를 묶으면 비슷한 '식별 효과'가 나타났다.
췌장암 치료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화학치료 내성이다. 실제로 화학치료가 진행되면 췌장암은 곧바로 내성을 보인다. 연구팀은 이런 내성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밝혀냈다.
종양 주변의 염증성 세포, 이른바 '염증성 암 연관 섬유아세포'(inflammatory cancer-associated fibroblast)가 주범이었다.
종양 미세환경에서 이 유형의 세포가 세 배 정도로 증가하는 게 췌장암의 화학치료 내성과 깊숙이 연관돼 있었다. 이 유형의 세포가 췌장암의 화학치료 내성을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췌장암 세포가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다시 말해 전이하는 성질을 갖게 되는 전환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전임상 동물 모델에 이번 연구 결과를 적용하는 실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장차 환자 대상의 임상실험을 할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가장 유망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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