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우리 몸 안에 있는 단백질 중 가장 많은 게 1형 콜라겐이다. 섬유아세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 콜라겐은 대부분의 뼈, 힘줄, 피부 등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암세포가 독특한 콜라겐을 만들어 면역계 공격을 피하는 데 이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췌장암이 생긴 생쥐 모델에 실험한 결과, 암 종양이 소량 생성하는 이 콜라겐은 특이한 구조의 세포외 기질(extracellular matrix)을 형성했다. 그러면 이 세포외 기질이 종양 내 미생물 총의 구성을 바꿔 면역계 공격을 막았다.
보통 콜라겐과 형태가 다른 이 콜라겐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한 암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 연구는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 센터의 라구 칼루리 박사팀이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21일((현지 시각) 셀 프레스에서 발행하는 '동료 심사' 종양학 저널 '캔서 셀'(Cancer C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번 연구의 최대 성과는, 섬유아세포가 생성하는 보통 콜라겐과 암세포가 만드는 특수한 콜라겐의 기능이 어떻게 다른지 규명한 것이다.
논문 수석저자를 맡은 칼루리 박사는 "암세포는 전형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콜라겐을 만들어 자기를 방어하는 세포외 기질을 형성한다"라면서 "이 세포외 기질은 T세포를 축출할 뿐 아니라 암세포의 생존과 확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종양 내 미생물이 변하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콜라겐은 2개의 α1 체인(사슬 구조)과 1개의 α2 체인으로 구성된 '이종 3량체'(heterotrimer) 형태를 띤다. 이런 3량체(3분자체)가 결합한 '3중 나선'(triple-helix) 구조가 모여 세포외 기질을 형성한다. 따라서 보통 콜라겐을 만드는 섬유아세포엔 α1과 α2 유전자가 모두 발현한다.
그런데 인간의 췌장암 세포는 α1 유전자(COL1a1)만 나타났다. 원인을 확인해 보니 암세포는 후성 유전적 과메틸화(hypermethylation)를 통해 α2 유전자((COL1a2)의 발현을 막았다.
암세포가 3개의 α1 체인으로 구성된 '동형 3량체'(homotrimer) 콜라겐을 생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런 암세포 특이 콜라겐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암세포에서 α1 유전자를 제거해 동형 3량체 콜라겐이 생기지 않게 만든 '노크 아웃'(knockout) 췌장암 생쥐 모델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암세포 특이 콜라겐의 생성이 막힌 생쥐는 대부분 암세포가 빠르게 늘지 않았다.
종양 내 미생물 총의 면역 관여 프로그램이 다시 깔려, 암세포를 파괴하는 킬러 T세포가 늘고 PD1 면역관문 억제 치료에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암세포 특이 콜라겐은 소량만 생성되기 때문에 반대 상황을 만드는 '노크 아웃' 실험을 하지 않고는 어떤 작용을 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암세포 특이 콜라겐이 생성되지 않으면 종양 내 미생물 구성에 변화가 생겨, T세포가 늘고 면역 반응 억제 기능을 하는 '골수 유래 억제 세포'(MDSCs)는 줄었다.
실제로는 T세포를 유도하는 EXCL 16 수위가 올라가고, MDSCs를 끌어들이는 EXCL 5 수위가 낮아졌다. 당연히 이런 변화는 췌장암 생쥐의 장기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항생제를 투여해 종양 내 미생물을 교란하면 금방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 이 항생제 시험은, 암세포 특이 콜라겐과 세포외 기질이 종양 촉진 미생물을 강하게 만들어 암의 진행을 부추긴다는 걸 시사한다.
나쁜 암세포 콜라겐이 차단되면 기질 내 일반 콜라겐이 늘어 암의 진행이 억제된다는 것도 재차 확인됐다. 칼루리 박사팀은 선행 연구에서 이 부분을 먼저 발견했다.
암세포 특이 콜라겐은 또 인테그린 αⅢ라는 단백질의 표면에 붙어 암세포 증식 신호 경로를 상향조율했다.
생쥐 모델에서 이 단백질 발현을 차단하면 T세포의 종양 침투가 증가하고 생존 기간이 길어졌다.
칼루리 교수는 "암세포를 빼면 인체 내의 어떤 세포도 이렇게 독특한 콜라겐을 만들지 못한다"라면서 "암 환자의 반응률을 개선하는, 매우 특정적인 치료 표적의 개발로 이어질 잠재력이 매우 크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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