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성간 기자 = 임신 중 간질 발작을 막기 위해 항경련제 토피라메이트 또는 발프로에이트를 복용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 지적장애(ID: Intellectual Disability) 등 신경발달 장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르웨이 베르겐(Bergen) 대학병원 신경과 전문의 마르테-헬레네 비에른 교수 연구팀이 1996~2017년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태어난 아이들 449만4천926명의 8세까지 의료기록과 이들 어머니에게 임신 중 처방된 약물에 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영국의 일간 데일리 메일 인터넷판이 최근 보도했다.
이 가운데 간질이 있어 임신 중 간질 발작을 억제하는 항경련제가 처방된 여성에서 태어난 아이가 1만6천170명, 간질이 있지만 항경련제를 복용하지 않은 여성에서 출생한 아이가 2만1천364명이었다.
연구팀은 이 두 그룹 아이들의 ASD, ID 등 신경발달 장애 발생률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임신 중 토피라메이트나 발프로에이트를 복용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8세 이전에 ASD나 ID가 발생할 위험이 이 두 가지 항경련제를 복용하지 않은 여성의 아이들보다 약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중 토피라메이트를 복용한 여성이 출산한 아이들은 ASD 발생률 4.3%, ID 발생률은 3.1%였다. 임신 중 발프로에이트를 복용한 여성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ASD 발생률 2.7%, ID 발생률은 2.4%였다.
이에 비해 임신 중 토피라메이트나 발프로에이트를 복용하지 않은 여성의 아이들은 ASD 발생률이 1.5%, ID 발생률이 0.8%였다. 복용 용량이 높을수록 이러한 위험은 더욱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토피라메이트의 경우 임신 중 하루 복용 용량이 100mg 미만인 경우는 태어난 아이의 신경 발달장애 발생률이 1.7배, 복용 용량이 10mg 이상이면 이러한 위험은 2.9배로 급격히 높아졌다.
영국 국립 보건의료 제도(NHS: National Health Service)가 간질 환자에게 처방하는 토피라메이트의 용량은 하루 100~400mg이다.
발프로에이트의 경우, 임신 중 하루 복용 용량이 750mg 이하일 때는 태어난 아이들의 신경 발달장애 위험이 2.3배, 복용 용량이 750mg 이상일 때는 5.6배로 껑충 뛰었다.
영국에서 간질 환자에게 처방되는 발프로에이트의 하루 용량은 600~2천500mg이다.
토피라메이트와 발프로에이트를 제외한 다른 8가지 항경련제(라모트리진, 레베티라세탐, 카르바마제핀, 옥스카르바제핀, 가바펜틴, 프레가발린, 클로나제팜, 페노바르비탈)는 단독 투여의 경우 신경발달 장애 위험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피라메이트는 임신 중 복용하면 아기에게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크기 때문에 득과 실을 따져 득이 실보다 클 때만 권장된다.
발프로에이트는 출생 결함과 장기적인 학습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간질이 있어 임신 중 항경련제가 필요한 여성은 200명 중 한 명꼴이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임신 전이나 임신 중 항경련제를 끊으면 간질 발작 통제가 어려울 수 있고 심한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임신 중 발프로에이트를 복용하는 여성에게 태어날 아이에게 미칠 위험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NHS에 쏟아진 데 이어 발표됐다. 그러나 지금도 NHS의 복약 지시나 경고 없이 발프로에이트가 투여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의학협회 저널 - 신경학'(JAMA Neur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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