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심훈 시인의 ‘그날이 오면’의 첫 구절이다. 독립과 해방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돼 있다. 이 문구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100% 확신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날의 시작. 백신 2차 접종 시기가 온 까닭이다.
기자는 지난 5월 6일 서울 마포구 모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당시에는 아직 네이버나 카카오를 통한 잔여백신 예약이 도입되기 전이었다.
전화를 돌려 접종기관 수십 곳을 수소문했고, 마침내 잔여백신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른바 ‘노쇼 백신’이었다.
기자가 1차 접종한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였다. 이 시기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연령 제한이 30세 이상에서 50세 이상으로 상향되기 전이었고, 본격적으로 화이자‧모더나 물량이 국내에 입고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노쇼 백신 특성상 다른 대상자가 접종을 포기한 분량에 대해서만 접종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 우려로 불신론이 나오기도 했다. 여러모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후 11주하고도 이틀이 더 지난 7월 24일 비로소 2차 접종을 할 수 있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원래는 정확히 11주 뒤인 22일에 이뤄져야 했지만 이틀 미뤄졌고, 접종기관도 동대문구 소재 병원으로 변경됐다.
갑자기 화이자?…"내가 교차접종?"
여기서 잠시 시간을 돌려 지난 6월 22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 기자의 휴대전화로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귀하의 2차 접종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서 화이자 백신으로 변경됐습니다.”
말로만 듣던 ‘교차접종’ 대상자에 당첨(?)된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연령 제한이 30세 이상에서 50세 이상으로 변경된 까닭이었다.
보기와 달리 아직 30대 초반인 기자는 정부 지침에 따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받을 수 없게 됐다.
당시 기자와 같이 접종 제한 연령에 속한 30~50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 접종자는 약 66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 교차접종 대상자로 분류, 2차 접종에서 화이자 백신으로로 변경됐다. 기자 내외도 마찬가지였다.
교차접종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르자 교차접종에 대한 안전성 및 효능을 놓고 설왕설래했. 현재 교차접종을 허가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등이 있다.
정부는 교차접종이 단일 백신 접종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의 항체를 보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립감염병연구소는 수도권 지역 의료기관 10개 소속 의료인 499명을 대상으로 한 백신 효과를 비교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 백신 교차 접종군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회 접종군보다 중화항체가가 약 6배 높았다. 화이자 2회 접종군과는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교차접종이 효과적이라는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에서도 나왔다. 특히 독일 자를란트대에서는 교차접종이 아스트라제네카 단일접종보다 최대 10배 강한 면역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은 개인 임의로 백신 교차접종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교차접종의 안전성 및 효능이 장기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미 1차 백신을 맞은 상황에서 더는 뒤로 미룰 수도 없었다. 코로나19와 전쟁 중인 비상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배정받은 대로 화이자 백신으로 2차 접종을 받기로 결정했다.
찰나의 순간, 종식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
2차 접종일인 24일 오전 9시 접종기관인 서울 동대문구 소재 모 병원을 방문했다. 이미 몇 명의 접종자가 대기 중이었다.
기자는 대기번호 7번을 받았다. 대기자들의 연령은 제각각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도 있었고, 30대로 추정되는 부부도 있었다. 고령의 어르신도 계셨다.
대기번호와 함께 문진표를 받아들었다. 지난 1차 접종 때도 작성했기에 익숙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문진표에 코로나19 백신접종 여부에 대한 답변 뿐이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간호사가 기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접종 순서가 도래했다. 대기 순번과 달리 의외로 금방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향했다.
“1차 아스트라제네카 맞으셨을 때 아프셨죠?” 담당의사가 물었다. 사실 1차 접종 이후 열이 38도 넘게 치솟아 이틀 가량 고생한 바 있다.
의사는 “화이자도 부작용이 있긴 한데 아스트라제네카처럼 고열이 치솟는 등 전신부작용이 잘 오지는 않는다. 대신 접종 부위가 뻐근한 국소 근육통은 화이자가 좀 더 심하다. 한 2~3일 정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접종 후 두통이 심하면 타이레놀을 복용하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간호사가 접종을 맡았던 1차 접종과 달리 2차 접종에서는 앞서 문진한 의사가 직접 주사했다. 이제 그 유명한 ‘최소 잔량 주사기’가 등판할 차례였다.
의사는 “일반적으로 1회당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0.5mL를, 화이자 백신은 0.3mL를 접종한다. 따라서 일반 주사기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1바이알 당 10회, 화이자 백신은 6회 접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소잔량 주사기를 사용하면 아스트라제네카는 12회, 화이자는 7회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따끔합니다”는 말과 함께 왼팔에 주사기가 꽂혔다. 찰나의 순간.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이 모이고 모이면, 그래서 우리가 모두 백신을 맞는 날이 오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머리를 스쳤다.
접종 이후 ‘코로나19 예방접종 완료’라고 적힌 스티커 한 장을 받았다. 이 스티커를 운전면허증에 붙였다. 앞으로 백신접종을 증명할 일종의 ‘증명서’가 된 셈이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백신접종으로 받을 혜택에 대한 기대보다 이 스티커가 앞으로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희망의 표식이 되길 바라는 바람이 더 크게 자리매김했다.
접종자마다 다른 부작용 발생, 이틀 뒤 나아져
이제 걱정해야 할 것은 한 가지 부작용이다. 사실 백신 부작용은 많은 이들이 접종을 망설이게 하는 주요인 중 하나다. 특히 1차 접종 이후 고열을 앓는 등 이미 ‘당해 본’ 입장에서는 더 더욱 부담스럽다.
교차접종의 경우 단일 종류 접종보다 임상데이터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효과가 좋다고는 하지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더더욱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며칠 전 경북 칠곡에서 50대 경찰관이 교차접종을 받은 지 3일 만에 숨졌고, 같은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19 백신 교차접종 후 심장수술을 받게 됐다는 한 40대 여성의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접종 후 다행히 큰 이상반응은 없었다. 1차 접종 당시에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1‧2차 접종 백신이 다른 만큼 일말의 불안감은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집에서 몸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부작용은 수 시간 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요 증상은 ‘두통’이었다. 평소에도 약간의 편두통기가 있기는 했지만 기존 두통과는 결이 달랐다. 마치 술 마신 다음날 숙취처럼 머리만 깨질 듯이 아팠다.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당시와 달리 심각한 발열 증상은 없었다. 체온이 37.1도로 다소 높기는 했지만 정상 범주였다. 발열과 함께 나타나는 오한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함께 교차접종을 한 아내의 경우 접종 당일에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접종 부위에 멍든 것처럼 욱신거리는 근육통을 느꼈다.
의사가 권고한 대로 인근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구매해 복용했다. 다행히 복용 이후 두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대로 견딜 만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낸 뒤 잠을 청했다.
머리는 다음날 아침에도 지끈거렸다. 다만 전날보다는 그 강도가 덜했다. 한 번 더 진통제의 힘을 빌려야 했다. 진통제 복용 후 시간이 지나자 두통은 거의 다 사라졌다.
하지만 아내는 근육통을 호소했다. 접종 부위 외에도 여기저기서 쑤시는 듯한 근육통이 발생했고, 귀 안쪽에서도 약간의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다만 아내도 발열은 없었다.
아내에게는 또 다른 증상도 있었다. 백신접종 후 평소 주기보다 3일 빨리 생리가 시작됐다. 국‧내외 사례를 확인한 결과 백신접종 이후 생리불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본격적인 사례 수집에 나선 연구진도 있었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에 따르면 백신접종 후 하혈, 생리량 증가, 생리주기 지연, 극심한 생리통 등의 현상이 상당수 접수됐다.
다만 코로나19 백신이 생리불순을 야기하는 지에 대해서는 반박 의견도 있었다.
줄리 레빗 노스웨스턴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하혈은 여러 이유로 발생한다”며 “백신 접종으로 일시적 호르몬 불균형이 발생해 하혈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자 두 사람 모두 부작용 강도가 줄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두통과 구역감 정도만 느껴졌다. 아내 또한 점차 근육통의 강도가 감소했다.
이틀 뒤에야 ‘공식적’으로 접종완료
부작용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문제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접종사실 확인이 이틀 후에나 가능했다는 것이다.
국내 백신 접종자 관련 데이터는 질병관리청에서 전적으로 관리한다. 접종기관이 질병관리청에 접종완료 사실을 신고하면, 질병청은 해당 접종자의 데이터를 전산으로 관리한다.
접종자는 전자예방접종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COOV’를 다운로드한 후 본인인증을 마치면 예방접종증명서가 발급된다. 해당 데이터는 블록체인 기반 보안시스템으로 보호된다.
전자예방접종증명서 시스템은 향후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 등 백신 인센티브 자격 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카카오나 네이버, 토스, 패스 등 서비스와 연계해 예방접종 사실을 QR코드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물론 우선 ‘신고’가 돼야 한다. 기자의 경우 접종 후 이틀이 지난 시점까지도 '접종완료' 안내 문자를 받지 않았다. 질병관리청 전산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1차 접종 당시에는 접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문자를 받았고, COOV 앱을 통해서도 1차 예방접종증명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COOV 앱에는 데이터 취합으로 접종완료 이후 24시간까지 증명서 발급이 지연될 수 있다는 공지가 있었다. 하지만 기자의 경우 55시간이 지난 뒤인 26일 오후 4시경이 돼서야 접종완료 문자를 받았다.
2차 접종 전자예방접종증명서가 등록된 시점도 그 즈음이었다.
주말이 지난 26일 오전 접종받았던 병원에 전산 미등록에 대해 문의했다. 병원 측은 주말에는 질병청 전산등록이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질병청 문의 결과 주말과 무관하게 접종 직후 전산등록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당국과 접종기간 간 혼선이 빚어졌다는 의미다.
물론 당장 큰 문제는 아니다. 현재 4차 대유행에 따른 수도권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만큼 백신접종 인센티브는 미적용 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백신 인센티브가 적용될 경우 이 같은 전산등록 지연은 시민들의 불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앞으로 질병청과 일선 의료기관이 소통에 신경 써야할 이유다.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요기 베라의 명언이다. 그리고 기자가 백신 접종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감정들을 모두 담을 수 있는 한 문장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의 백신접종이 남아있다. 26일 0시 기준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친 인원은 약 686만명에 그친다. 1차 접종 인원이라고 해도 아직 국민의 절반도 되지 않는 1689만명에 불과하다.
접종자들의 부작용 문제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도 코로나19 백신접종과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화이자 1차 접종 후 심근염으로 사망한 20대 남성 장병을 비롯해 신규로 3건의 사례에 대해 백신과의 인과성을 26일 인정했다.
돌파감염 또한 주목해야 한다. 특히 상당수 백신에 내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델타 변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내 돌파감염 추정 사례는 19일 기준 647명으로, 지난 8일 0시 기준 집계된 252명보다 11일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지난 12일까지 집계된 입원 또는 사망이 발생한 돌파감염 사례만 5492건에 달한다.
그러나 백신접종은 코로나19 극복의 첫걸음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부작용이 두렵지만 우선 백신을 맞아야 한다. 접종률을 최대한 빠르게 끌어올리고 접종 이후 이상 여부를 꼼꼼히 살피는 것만이 정답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백신접종 완료까지 그리고 접종 이후에도 끊임없이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