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박테리아가 어떻게 항생제 내성을 갖게 되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의 폐 질환과 낭포성 섬유증 등을 일으키는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이, 항생제나 박테리오파지(살균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으면 동종 세균에 경고 신호를 보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쟁에서 적의 공습을 받으면 경보를 울리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셈이다.
이 연구를 수행한 덴마크 코펜하겐대 보건의료 학부의 니나 몰린 회윌란드-크록스보 수의학·축산학과 조교수는 관련 논문을 학술지 '미생물학 저널(Journal of Bacteriology)'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 Irvine) 과학자들과의 협력 아래 진행됐다.
코펜하겐대가 22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연구진은 실험실의 페트리 접시에 녹농균을 배양해, 점막 표면에 감염이 생긴, 폐 낭포성 섬유종 환자의 환부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런 다음 항생제나 박테리오파지를 투여하고 녹농균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평소 녹농균은 항생제나 박테리오파지로 오염된 '위험 지역' 주변을 한가롭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동종 세균의 경고 신호가 전달되면 위험 지역에서 떨어져 그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쌌다.
회윌란드-크록스보 교수는 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하는 박테리아의 영리한 생존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녹농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박테리아 리스트에서 최상위 그룹으로 속해 있다. 이는 새로운 유형의 항생제 개발이 가장 시급한 세균이란 뜻이다.
코펜하겐대 연구진이 이번 발견에 흥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제 개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연구진의 자평이다.
연구진의 다음 연구 목표는, 녹농균 사이의 신호 교환이나 위험 신호 전달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회윌란드-크록스보 교수는 "다른 세균에 위험 신호를 보내는 걸 약물로 차단할 수 있고, 아니면 신호 받는 걸 막을 수도 있다"라면서 "어느 쪽이든 잠재적으로 항생제나 박테리오파지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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