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지난해 영국(스코틀랜드 제외) 내 낙태 건수가 20만건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낙태를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는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본토로 넘어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이들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현지시간) 영국 보건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낙태 건수는 사상 최대인 20만608건으로, 전년(19만2천900건) 대비 4% 증가했다고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미 자녀를 가지고 있거나 비교적 나이가 많은 여성들의 낙태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낙태를 한 여성 중 56%는 이전에 이미 한 차례 이상 임신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10년 전 이 비율은 48%였다. 지난해 35세 이상 낙태자는 3만4천380명으로 전년 대비 6% 늘어났다.
30∼34세 여성 1천명당 낙태자 비율은 2008년 15.6명에서 지난해 19.9명으로 높아졌다. 35세 이상은 같은 기간 6.7명에서 9.2명으로 증가했다.
영국 임신자문서비스(British pregnancy advisory service)의 클레어 머피 국장은 이같은 현상이 무료 피임약 등 접근 가능한 피임 서비스가 주로 젊은 여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머피 국장은 상대적으로 나이든 여성이나 이미 자녀를 둔 여성에게 이같은 서비스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북아일랜드에서 낙태를 위해 영국 본토로 건너온 여성은 1천53명으로 전년 대비 22%(192명) 급증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내에서 유일하게 낙태를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는 지역이다.
영국은 의사 두 명의 동의 아래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24주 이후에도 산모 건강, 심각한 기형 등의 예외사유를 인정한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여성의 생명에 위협이 있거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영구적이고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우려될 경우에만 낙태가 가능하다.
성폭행, 근친상간, 태아 기형 등의 사유도 법적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으며, 이를 어길 경우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북아일랜드의 낙태금지 규정 개정은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는 집권 보수당이 정권 유지를 위해 북아일랜드 지역에 기반을 둔 민주연합당(DUP)과 사실상 연정을 구성했는데, DUP는 사형제 부활, 성 소수자 차별, 낙태 반대 등 보수적인 정책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보수당 정부는 섣불리 낙태금지 규정 폐지를 받아들이면 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영국 의회는 2017년 노동당 스텔라 크리시 하원의원 주도로 북아일랜드 여성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무료로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전에 북아일랜드 여성은 영국으로 건너와 사설 병원 등에서 900 파운드(약 135만원)의 비용을 내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