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동안 증가했던 R&D 투자 및 임상시험이 최근 감소하고 있다.
각국의 확장 재정 정책이 마무리되고 민간의 투자가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바이오벤처들이 자금난으로 신약 파이프라인 임상시험을 중단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된 신약 개발 시장에서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지난 해 6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임상시험을 지원하는 업계 종사자로서 일보 전진 후 이보 후퇴하는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디지털화, 기간·비용 단축하는 지름길"
위기와 선택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바이오기업 10년 후 신약개발 산업의 지형도는 바뀔 수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리더십과 혁신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주요 상위 상장 제약기업들은 코로나 기간 동안 투자 규모를 40% 확대하는 등 신약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팬데믹을 맞은 위기의 순간, 디지털 기술 도입을 통해 임상시험 효율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는 기업들이 기회를 찾아낸 셈이다.
필자는 클라우드 기반 임상솔루션 IT기업에서 신약개발을 지원하며 제약기업 및 바이오벤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게 된다. 세부적인 고민거리는 다양하지만 통상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10년 이상 기간과 몇십억 달러 이상의 비용은 모두에게 어려움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에서 디지털 전환은 데이터 품질을 확보하고 효율을 높이면서 전반적인 기간과 비용을 단축하는 신약 개발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현재 임상시험 솔루션은 임상시험 계획부터 환자 모집,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등 임상시험 전 주기에 걸쳐 활용된다.
통합 플랫폼을 통한 전자데이터 수집, 관리 및 분석은 임상시험 전(前) 단계에서 수동 작업을 최소화하며, 각 규제기관의 권고를 준수하고 리스크에 대비해 더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도와 임상시험 일정을 단축하는데 기여한다.
실제로 메디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통합 디지털 솔루션 사용은 임상시험 수행기간을 5개월 단축시켰다.
또한 임상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은 효율적인 기관 선정과 등록 예측을 지원하며, 임상 운영 단계에서 환자 등록률을 높일 뿐 아니라 최적의 연구 진행을 위한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환자 수가 적어 대조군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희귀난치성이나 암 질환치료제 연구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외부대조군인 합성대조군(Synthetic Control Arm)을 활용할 수도 있다.
메디데이터와 협력해 디지털 임상솔루션을 도입하는 기업은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19곳, 국내서도 150곳이 넘는다. 또한 이들 기업들 중 일부는 실제 2022년 FDA 신약 허가 및 글로벌 진출 성과를 이뤄냈다.
"디지털 임상 환경은 마련된 상황으로 정부·기업 협력해서 성과 낼 때"
임상시험의 디지털화는 선택이 아니다. e임상솔루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2021년 기준 e임상솔루션 시장 규모는 약 72억 달러(한화 약 8조 5억 원)로 추산되며,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3.6%씩 성장해 약 226억 달러(한화 27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기술 수출, 전임상, 임상 1,2,3상부터 FDA 허가까지,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혁신 신약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바이오벤처 역시 국내외 중견 기업들과의 투자, 글로벌 빅파마로의 기술이전, M&A 협력 등 오픈 이노베이션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규제 기관의 규정에 맞는 표준화된 플랫폼과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얻는 것이 유리하다.
정부 규제 완화라는 제도 환경도 뒷받침 돼야 한다. 크리니컬 트라이얼 아레나는 임상연구 동향 분석에서 2019년부터 지난해 5월 사이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분산형 임상시험 도입에서 한국의 비율은 1.2%에 그쳐, 영국(12.8%)이나 호주(12.3%) 등 글로벌 순위에 뒤처지고 있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 원격의료, 의약품 직배송 등 일부 규제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학계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료기관에서는 분산형 임상시험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규제 완화 가이드라인을 위한 산학계 논의도 활발하다.
최근 정부에서는 2030 바이오 선도국가 진입을 위해 최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첨단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바이오 분야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히며, 올 상반기에는 규제 개선을 위한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디지털 임상시험에 대한 기술적 인프라는 이미 마련됐다. 이제 각계 노력이 모여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코자 하는 한국 제약산업을 위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