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한의사 1차의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가 제안한 ‘통합한의학전문의’ 제도가 한의사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추진이 중단됐다.
추진에 반대한 한의사들은 "통합한의학 전문의 역할이 모호하며,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또한 기존 한의전문의들에 대한 경과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6일 한의협에 따르면 ‘한의사전문의 제도 개선 추진 승인의 건’을 두고 지난 9일~12일 대의원 서면결의를 진행한 결과, 참여한 대의원 186명 중 67명이 찬성하고 119명이 반대해서 안건이 부결됐다.
앞서 한의협 집행부는 종합적인 한의진료를 수행하기 위해 ‘(가칭) 통합한의학과 전문의’를 교육과정에 새롭게 추가해야 한다며 해당 안건을 상정했다.
안건에는 통합한의학과 전문의 외에도 ▲한의 암 전문의 ▲한의진단학과 전문의 ▲한의예방의학과 전문의 양성을 위한 신규 교육과정 개편 방안이 담겼다.
통합한의학과 전문의는 의원급에서 담당하는 경증 외래질환에 대해 진료 도구의 제한 없이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한의사의 진료 영역이 지금보다 넓어지게 된다. 한의협은 한의사가 1차의료 역량을 강화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 사업에서 한의사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의진단학과 전문의’와 ‘한의예방의학과 전문의’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인의 감염병 관련 업무 수요가 증가한데 따라 신규 전문의과정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중 한의협은 한의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의료계는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의협 집행부는 정부사업과 감염병 사태에서 한의사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추진했지만, 반대표를 던진 한의사들은 “한의학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반발했다.
대한한의사전문의협회(이하 한의전문의협)는 대의원 서면 결의가 마감되기 전날인 지난 11일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한의전문의협은 성명을 통해 “집행부가 제시한 ‘통합한의학 전문의 과정’은 수천년간 이어진 한의학에 대한 자기부정”이라며 “애초 한의학은 통합의학인데, 치과협회에서 ‘통합치의학전문의’ 제도를 시행했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집행부의 비전문적인 회무 추진”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교육과정 개편이 내부적으로 힘을 받지 못한 데는 최혁용 한의협 회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최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1년 3월까지다.
한의협 집행부 임원은 “제도 자체보다는 최 회장 임기 말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앞서 한의협 집행부는 의대·한의대 학제통합을 추진했는데 이 역시 내부 반대 여론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
최 회장은 “한의사의 진료 자율성과 한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득에 나섰지만, 회원들은 “한의학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의대·한의대 학제통합을 둔 대회원 투표 결과, 반대(71%)가 찬성(28%)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었다.